구조조정 반대 교수들에 이메일로 “목을 쳐주겠다” 표현, 학생 사칭 현수막도 걸어

▲ 중앙대 이사장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대학 임원들에게 학생을 사칭해 현수막을 걸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화면캡쳐 >

[일요경제=임준혁 기자] 중앙대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학과제 폐지 등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인사보복을 추진하며 “목을 쳐주겠다”고 표현함은 물론 학생을 사칭한 현수막을 걸어 학사구조 개편에 반대하는 여론에 맞서라고 지시한 사실이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다.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중앙대 특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압수수색에서 이 같은 내부 자료를 대거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2월 학과제 전면 폐지를 골자로 한 학사구조 개편안을 추진하던 중앙대가 개편안에 대한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박용성 회장은 지난달 24일 이용구 중앙대 총장과 보직교수 등 20여명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박 회장은 이메일을 통해 “인사권을 가진 내가 법인을 시켜서 모든 걸 처리한다”면서 “그들이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라고도 했다. 박 회장은 두산의 이메일 계정(******@doosan.com)을 이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회장은 이틀 후에 열릴 예정인 ‘긴급토론회’를 문제 삼았다. 중앙대 일부 교수들은 박 회장 측이 추진한 학과제 폐지 등을 투표에 부쳐 92.4%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학생 및 타 대학 교수 등과 함께 학내 집회 개최를 계획하고 있었다.

박 회장은 이를 두고 “(교수들을)악질 노조로 생각하고 대응해야지, (보직교수) 여러분은 아직도 그들을 동료로 생각하고 있다”고 압박했다.

또 다른 이메일에서도 학사구조 개편안에 반대하는 교수들이 주축이 된 '중앙대 교수대표 비대위(이하 비대위)'를 'Bidet(비데)', 'Bidet委員(비데위원)' 등으로 지칭하며 조롱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더 충격적인 사실은 비대위 관계자들을 ‘鳥頭(조두·무식한 말로 새XXX)’라고 지칭해 중앙대 재단 이사장 겸 두산중공업 회장으로서 품위를 스스로 깎는 속어를 사용했다는 데 있다.

비대위를 이끌고 있는 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는 “(비대위에 소속된 교수들을 겨냥해서) 그들을 꽃가마에 태워 복귀시키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음을 중앙대 인사권자로서 분명히 한다”고 박 회장이 발언했다고 밝혔다.

▲ 박용성(74) 중앙대 재단 이사장(두산 중공업 회장)

박 회장은 교수 투표일인 3월 11일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보낸 여러 통의 이메일에선 “시간을 다투는 사안은 투표율을 낮추는 것”이라며 “ ‘너희(교수들)가 투표에 참가하면 교칙을 위반한 것’이라는 공식 문서를 통보하라”고 적었다.

중앙대의 한 교수는 “그 무렵 실제 학교본부 측에서 그 같은 내용의 문서 통보를 받았다”면서 “교수들에게 막말을 했다는 문제를 차치하고도 재단 이사장이 학교 운영에 개입하는 건 명백한 사립학교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의 이메일은 중앙대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사장으로서의 박 회장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또 그가 대학 교수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뿐 만이 아니다. 박용성 회장은 지난달 25일 오전 이용구 중앙대 총장을 비롯한 재단 임원진에 이메일을 보내 학생 명의로 된 현수막을 게시하라고 지시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경희대와 한양대를 비롯한 전국 45개 대학 학생회가 중앙대의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날이었다.

박 회장이 중앙대 총장 및 임원진에게 보낸 이메일에 따르면 박 회장은 중앙대 총학생회 이름으로 ‘환영 3류대(성균관대인문대 경희대 한양대) 학생회 대표단 3류인 너희 대학이나 개혁해라 우리는 개혁으로 초일류가 되련다’는 현수막을 걸라고 지시했다.

‘뜻있는 중앙대 학생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환영 중앙대 사태에 즈음한 긴급 대토론회 경축’이라는 현수막을 걸라고도 주문했다. 박 회장은 “해당 문구에 검은색 띠를 둘러 장례식 같은 부위기(분위기의 오기)를 주라”며 구체적으로 현수막 형태를 지시하기도 했다. 이메일 앞부분에 “학교에서 안 하면 내가 용역회사 시켜 합니다”라고도 썼다.

이에 대해 김누리 비대위 위원장은 "(박 이사장이) 이 정도까지인 줄 몰랐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목을 치겠다' 등 발언은 한국 대학사회 전체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다.

전술한 일련의 이메일 내용과 표현에 대해 중앙대 측은 해당 이메일을 박 회장이 작성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내부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부분을 일기장처럼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최근 대학 측은 애초 개편안에서 한발 물러나 2016학년도 입시 ‘정시모집’에 한해 모집단위를 광역화하기로 교수, 학생 대표 등과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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