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 고의 지연시켜 수차례 '급행료' '금품·향응'받아

 
[일요경제=문유덕 기자] 수입자동차 '환경 인증'을 내주는 공무원이 이 독점적 권한을 악용해 휘두르며 외국 자동차 수입업체로부터 갖은 금품과 향응을 받다가 덜미가 잡혔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해외 수입 자동차의 배출가스, 소음 등의 환경인증 과정에서 인증 신청업체 관계자로부터 3200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 황진우 박사(선임 연구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30일 밝혔다.

황 연구원은 2009년 11월부터 지난달까지 환경인증을 신청한 업체로부터 모두 113회에 3200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받은 혐의다.

수입차 업체의 배출가스와 소음 검사를 담당하는 황 연구원은 법적으로 15일내 해야 하는 환경인증을 고의로 지연시킨 뒤 '급행료'를 낸 업체만 선별적으로 인증서를 발급해 준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황 연구원의 고의 지연으로 인증서 발급신청 민원의 절반가량이 처리되는 데에 1∼2개월이 걸리는 등 황 연구원의 '갑질' 행세는 다양했다.

외국 출장 시 인증 신청업체 관계자에게 연락해 동행하게끔 하였으며 지방으로 출장을 갈 때에도 업체 관계자에게 미리 자신의 일정을 알려 현지에서 접대를 하도록 유도했다.

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여종업원이 일하는 유흥업소에 같은 날 각각 다른 업체 관계자로부터 두 차례 향응을 받는 등 해당 유흥업소에서만 수차례 고정적으로 향응을 받기도 했다.

또한 친형이 원하는 수입 자동차의 차종을 수시 검사 대상으로 지정해 인증검사에 사용하게 하여 신차의 가치를 떨어뜨린 뒤, 정가보다 34%(약 1천100만원) 싸게 사기도 했다.

인증검사에 사용된 차량을 중고차 취급을 받아 시세보다 25%가량 가격이 할인되는데 황 연구원은 이보다 더 낮은 가격에 구입했던 것이다.

황 연구원이 '인증 권한'을 무기로 각종 횡포를 일삼을 수 있었던 것은 수입 자동차가 국내에서 시판되려면 교통환경연구소의 인증을 받아야 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인증' 이라는 막강한 권한이 실린 자리에 인증 관련 세부적인 업무처리 지침도 없었으며 이에 대한 견제 장치도 없이 운영해 왔다. 담당 공무원이 자의적으로 일을 처리해도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결국 황 연구원의 갑질 행세는 수입 자동차 업체의 반발로 드러나게 됐다. 주한유럽연합대표부(EU-ROK)가 회원국의 자동차 업체로부터 '교통환경연구소 공무원이 고의로 인증서 발급을 지연하고 급행료를 받고 있다'는 민원을 받아 환경부에 공식으로 항의문을 전달한 것.

이 과정에서 경찰이 관련 첩보를 입수해 황 연구원의 범행이 밝혀지게 됐다.

상위기관인 국립환경과학원(원장 공석 중)은 감사기능이 없으며 소관부처인 환경부(윤성규 장관) 또한 매년 교통환경연구소를 대상으로 감사를 진행했음에도 이런 행위들을 적발해 내지 못했다.

문제가 된 교통환경연구소 김정수 소장은 "황진우 연구원이 몇 년 동안 그렇게 해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재발방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해서 예방책을 마련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그리고 "황진우 박사는 현재 업무에서 배제돼 있으며 수사결과를 지켜본 후 내부규정에 따라 처리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실이 아니다, 수입업체의 과장된 표현이다"고 하는 등 황 연구원을 감싸는 듯한 발언에 대해 "급행료와 향응, 금품수수가 사실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사실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경찰은 황씨에게 70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 이모(36)씨를 뇌물 공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금품과 향응 등을 제공한 또다른 수입차 업체 관계자 13명은 뇌물 액수가 소액이어서 입건하지는 않았다.
 

저작권자 © 일요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