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도 징크스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이 중요한 공사를 결정할 때, 논리와 계산 이외의 요소는 조금도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고 철저하게 분석한 뒤 과학적인 근거에만 입각해 일을 진행하지 않겠냐는 설명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도 때론 미신 아닌 미신에 시달린다. 일부 재계 관계자들은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길한 징조들이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거칠 것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도대체 어떤 징크스가 따라 다닐까. [일요서울]이 알아봤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바짝 다가왔다. 전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은 각국의 축구 대전을 넘어 기업들의 마케팅 격전지로 불린다. 그만큼 경제 파급 효과가 대단하다는 뜻이다.

실제 한양대 스포츠산업마케팅센터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축구가 16강에 올랐던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10조2000억 원의 경제 파급 효과가 창출됐다. 전문가들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역시 이를 상회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이러한 규모 때문에 기업들은 월드컵 마케팅을 통해 한 해 농사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월드컵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우선 국내 기업 유일의 월드컵 공식 스폰서 현대자동차는 이미 월드컵 관전과 현지 관광을 내건 글로벌 마케팅을 시작했다. 한국은 물론 독일, 러시아, 중국 등 58개국에서 차량 시승 행사를 열고, 참가 고객 중 200명을 추첨해 브라질 월드컵 관람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앞서 2010 남아공 월드컵 공식 스폰서로 지정된 현대자동차는 경기장 광고판 홍보로만 8조6000억 원의 마케팅 효과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TV 광고 효과와 각종 거리 응원 후원 등을 통한 브랜드 인지도 상승분까지 합하면 약 20조 원에 달하는 광고 효과가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물론 공식 후원사가 아니더라도 마케팅에서 빠질 수는 없다. 가전·유통·게임·의류업계 등은 이미 총성 없는 전쟁터로 변한 지 오래다.

맥도날드는 월드컵을 앞두고 어린이 축구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코카콜라 역시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부터 추첨을 통해 원정 응원단을 구성하고 있다. 동아오츠카는 한국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인 홍명보감독의 홍명보장학재단을 후원해 월드컵 마케팅에 동참한다.

특히 가전업계의 분위기는 더욱 심상찮다. 제습기 시장은 지난해 130만대 규모로 2012년에 비해 약 3배 늘었다. 올해는 월드컵이 예정된 만큼 240만대로 전망하고 있다. TV 시장도 월드컵 영향으로 한때의 부진을 만회할 것으로 보인다.

화장품·패션업계를 보면 업계의 특성대로 직접적인 관련 상품을 출시하는 모습이다. 아디다스가 월드컵을 기념해 새로운 축구화 배틀팩을 판매한다. 존슨앤드존슨의 뉴트로지나는 이달 말 브라질 월드컵 선케어 스페셜 세트를 출시한다. 브라질월드컵의 공식 타임키퍼로 선정된 위블로는 앰배서더 펠레 이름을 딴 시계를 출시한다. 홈플러스는 붉은악마 공식 슬로건 티셔츠를 독점 판매하고 있다. 티셔츠에는 붉은악마가 국민 공모를 통해 선정한 ‘즐겨라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다.

이처럼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찰 만큼 월드컵을 향한 기업들의 공격적 행보는 끊이질 않고 있다. 이 외에도 향후 주류에서 금융권까지 온 나라가 월드컵으로 물들 예정이다.

울상 짓는 부동산

다만 모두가 월드컵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유통업계나 가전업계 등은 마케팅 열전에 힘을 쏟는 반면 분양 시장은 월드컵 피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유가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빌리면 아파트 분양 시장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흥행몰이를 이어가야 하는 것이 중요한데, 모든 이슈를 잡아먹는 거대 블랙홀과 같은 월드컵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파트 분양 시장은 몇 개월 만에 수천억 원의 매출이 왔다갔다 한다. 자칫 괜히 월드컵과 엮여 패배의 쓴 맛을 느낀다면 수천억 원이 허공에 날아가는 셈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견본주택을 개관하거나 분양을 시작하는 시기를 조정할 때 당연히 월드컵 또는 선거와 같은 이슈를 피해간다”면서 “중간에 흥행이 멈추면 분양 계약률이 바닥을 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업계는 5월을 분양 마지노선으로 보고 여름휴가가 끝나는 9월께부터 다시 분양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분양 시장에선 4월 말에 이어 5월 초 수도권과 전국 곳곳에서 아파트 분양 물량이 쏟아져 나왔다. 규모를 살펴보면 대략 6만~7만 가구, 최근 5년 간 평균치의 두 배 정도가 추정된다.

일례로 삼성물산과 대우건설은 서울 용산에서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를 나란히 분양한다. 삼성물산은 산구 한강로2가 342번지 일원 용산전면3구역을 재개발해 전용면적 135~248㎡에 달하는 래미안용산(주상복합)을 이달 중 분양한다.

대우건설 역시 용산구 한강로2가 342번지 일원 용산전면2구역을 재개발해 전용 112~273㎡의 용산푸르지오써밋(주상복합)을 분양한다.

수도권에서는 포스코건설이 하남시 미사강변도시 A10블록에 전용면적 89~112㎡, 총 875가구를 짓는 미사강변도시 더샵 리버포레를 분양한다.

또 반도건설은 경기 평택시 소사벌지구 B7·B8블록에 총 1345가구의 평택 소사벌 반도유보라아이비파크를 분양한다.

늦어도 5월 중순까지 분양해야 6월 초순까지 계약을 마칠 수 있어 월드컵 영향권을 벗어난다는 계산이다. 일부 6월 전후 분양 예정이던 단지들 역시 분양을 한두 달 당기거나 늦추는 것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 부동산업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월드컵 시즌이 오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라면서 “모두가 월드컵 응원에 정신없지 않느냐. 아파트 같은 경우는 월드컵과 마케팅으로 연관짓기가 굉장히 애매하다. 모든 업계가 성수기라고 해도 부동산 시장은 비수기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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