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사진)이 관피아 출신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평소 우리은행 민영화 등 수많은 현안과 관련해 가감 없이 직언하는 그 역시 관피아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닫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관피아 논란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그 중심에 모피아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도 모피아의 대표적 인물, MB 라인의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한마디로 그의 유일한 아킬레스건이 바로 관피아 출신이라는 점이다. 박병원 회장과 전국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모피아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대한민국 관피아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그 원조 격으로 분류되는 모피아(정권을 비롯해 금융권 등으로 진출한 재무부(MOF-Ministy of Finance·현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를 향한 시선이 날카롭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한국거래소, 예탁결제원, 한국투자공사, 금융감독원 등 모피아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았던 곳이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모피아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런데 모피아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 있다. 바로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이다. 박 회장은 재정경제부 1차관과 MB 정부 두 번째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대표적인 모피아의 일원이다. 더욱이 은행들의 연합체인 전국은행연합회는 1984년 창립 이후 박 현 회장을 포함한 11명의 회장 중 8명이 관료 출신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 회장은 평소 정부에 대해 직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은행 민영화와 관련해선 “사모펀드, 외국은행, 재벌 등을 모두 거절하면 누가 사겠느냐”면서 “비(非)금융주력자는 은행을 살 수 없다는 이상한 규제가 남아 있는 한 지구상에서 우리은행을 살 수 있는 투자자는 없다. 우리은행을 사고 싶어 하지 않는 금융지주사들에게 정부가 나서 인수하라고 강요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크고 작은 금융 사고에 대해 은행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무조건 최고 수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은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실제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바꾸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고 직설적으로 밝혔다.

금융당국이 최근 징계를 받은 김종준 하나은행장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제재내용을 조기에 공개하는 등 압박을 가하는 금감원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관피아에 대해서 만큼은 조용하다. 지난 3일(현지시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 차 방문한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도 관피아에 대한 질문을 받은 박 회장은 “내가 후계인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면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일각에선 박 회장이 관피아 논란에 대해 스스로 속 시원하게 밝히지 않는 이상 임기가 끝날 때까지 꼬리표를 떼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제 갈 길을 막는 아킬레스건과 같은 사항이라는 말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평소 박 회장의 성격으로 봤을 때 모피아 논란과 관련해 스스로 인정은 하지만 대놓고 왈가왈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차라리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생각이 큰 듯 보인다”고 전했다.

깨지지 않는 장벽

시야를 박 회장에서 금융권 전체로 넓혀보면 더욱 심각하다. 금피아(금융감독원+모피아)도 마찬가지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23개 주요 금융회사에 재직한 기획재정부 및 금융감독원 출신 인사는 124명에 달한다. 금융지주·은행·보험·증권의 상위 3~5개사를 분석한 결과 모피아 출신은 모두 86명, 금피아 출신은 38명으로 집계됐다.

아울러 최근 여신금융협회와 저축은행중앙회 신임 부회장에 금감원 출신 인사가 낙점되면서 금융협회장 자리는 모피아가, 부회장 자리는 금피아가 차지하는 공식이 재연됐다.

이를 두고 민병두 의원은 “10년간 발생한 대규모 금융소비자 피해 사례가 발생한 원인도 1998년 통합 금융감독체제 출범 이후 금융정책 실패와 금융감독 실패가 동시에 발생한 탓”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2003년 카드대란 사태와 2009년 키코 사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지난해 동양 사태와 올해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태 등 소비자들의 대규모 피해를 유발한 사건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모피아·금피아 낙하산 인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짚어낸 대목이다.

오죽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관피아나 철밥통이라는 부끄러운 용어를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추방하겠다는 심정으로 관료사회의 적폐를 국민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확실히 드러내고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세월호 참사 여파로 공직사회에 대한 대대적 수술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모피아의 금융기관장 이동이 사실상 막힐 전망이다. 모피아가 대표적 관피아로 지적돼 온 만큼 금융기관행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전행정부는 현재 조합·협회 취업도 제한할 수 있도록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관피아 논란이 수면위로 올라옴에 따라 당분간 인사가 스톱되면서 금융기관장 공석 상황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은행권의 특성상 회장이 정부와 협력하거나 부딪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때문에 모피아 출신 인사들이 자주 선임 된다”면서 “업무의 바운더리가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정부와 서로 짬짜미를 할 가능성도 있어 양면성이 존재한다. 다만 모피아의 경우 워낙 오래전부터 비판이 많아 차츰 나아지는 형국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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