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女 시부모 공경·남편 내조·자식양육 ‘현모양처?’
피해男 “목숨 걸고 탈출한 사람이 못할 일 없다”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남남북녀’, 예로부터 남쪽 지방은 남자가 잘나고 북쪽 지방은 여자가 아름답다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은 2만5천 명이 넘었으며 이 가운데 70%는 여성이다. 증가하는 새터민 여성들이 생활력 강하고 현모양처라고 알려지면서 남성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제결혼 소개비보다 저렴하고 언어가 통한다는 점은 남성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남남북녀의 만남은 쉽지 않다. 새터민 여성에게 돈을 뜯기거나 불법 업체를 통해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급증하고 있는 남남북녀 결혼의 피해 사례를 살펴봤다.

35세 강모씨는 지난해 ‘더 늦기 전에 결혼하기 위해’ 탈북 여성(새터민) 소개업체를 찾았다. 국제결혼은 문제가 많다고 느껴 새터민을 찾은 것이다. 현재까지 3명의 여성들과 만났지만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 해당 업체는 6번의 만남을 주선해 주는 곳이라 강씨는 초조함이 밀려왔다.

가입비 300만 원에 5~7번 만남만 가능

새터민 여성과의 결혼을 원하는 남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30~50대의 남성들이 새터민 여성과의 만남을 주선해주는 결혼정보업체(이하 새터민 결혼업체)를 찾았다면, 지금은 20대 남성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웹 사이트에 등록된 업체만 해도 10여 개가 넘어간다.

새터민 결혼업체의 가입비는 초혼/재혼 모두 200만~300만 원이다. 가입을 원하는 사람은 먼저 업체에 전화로 상담한뒤 직접 회사를 방문해 혼인관계증명서, 재직증명서와 같은 서류를 제출, 가입 자격을 심사받아야 한다. 서류 검토 후 가입 자격이 인정되면 추가로 졸업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제출하고 가입비 납부 후 정식 회원으로 등록된다.

가입 이후에는 업체를 통해 새터민 여성과 맞선을 볼 수 있다. 업체별로 다르지만 적게는 5번에서 많게는 7번의 만남이 가능하다. 물론 결혼 전까지 만남을 주선해주지는 않는다. 5~7번의 만남에서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면 다시 가입해 만남을 이어가야 한다.

새터민 결혼업체 관계자는 “힘든 일을 겪고 낯선 땅에 정착한 새터민 여성 중에는 제일 먼저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며 “몇 년 전부터 새터민 여성들의 인기가 늘어 가입을 원하는 남성들이 많아졌다. 우리 업체는 엄격한 심사를 통해 가입된 남성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혼에 성공해 행복하게 사는 커플이 많다”면서도 “인연을 만날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높으니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탈북 과정·과거 숨겨… 돈만 뜯기고 이혼”

그러나 ‘인연 만들기’는 쉽지 않다. 결혼에 골인했다고 해서 안심하기엔 이르다. 결혼 후 새터민 여성에게 ‘당했다’는 피해자들은 “새터민 여성에 대해 최대한 많이 알아보고 결정하라”고 조언한다.

37세 최모씨는 지난해 새터민 부인과 이혼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던 최씨의 꿈은 결혼한 지 3년 만에 물거품이 됐다. 최씨는 “북한 여성은 착하고 남자 외모를 따지지 않고, 강한 생활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이는 모두 내 착각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집과 차는 물론이고 자신의 등록금까지 요구했다”며 “북한 가족에게 돈을 송금해야 한다면서 내 통장을 가져가기도 했다. 목숨 걸고 탈북한 사람인데 못할 일이 없어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3년 동안 돈만 뜯겼다”고 정리했다.

한참 신혼의 단꿈에 빠져있어야 할 이모(31·결혼 1년차)씨는 최근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 자신의 아내 A(새터민)씨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결혼정보업체는 A씨에 대해 결혼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A씨 또한 남편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씨는 이 말을 철석 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 술에 취한 A씨는 이씨에게 중국에 남편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탈북자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결혼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이씨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이씨는 “업체도 몰랐던 사실인지, 아니면 알고도 속인 것인지 궁금하다”면서 “알고 보니 나와 같은 피해자들이 많았다.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허가 안 받는 업체 ‘증가’ 조선족이 새터민?

그런가 하면 새터민 여성이 아닌 불법 업체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 남성도 있다.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업체들이 가입비만 받고 잠적하거나, 새터민이 아닌 여성을 소개시켜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 웹 사이트에 “30대부터 70세까지 노총각, 재혼, 사별하신 분들 탈북여성분과 맞선 주선합니다”라고 적힌 A4용지 크기의 모 업체 홍보물 사진이 올라왔다. 해당 업체는 “국제결혼 소개비용이 최소 1500만 원인데 비해 탈북여성과의 소개비용은 300만 원에 불과하다”며 탈북여성과의 만남을 권유했다. 또 “탈북여성은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국내인 신분’, ‘자연스럽게 말이 통함’, ‘다문화 가정 아닌 순수혈통 가정’, ‘처가에 지참금을 보내거나 생활비를 송금할 의무 없음’, ‘입국날 신부 행방불명 위험 없음’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홍보 전단지는 길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해당 업체가 관련 부처에 정식으로 허가를 받았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혼정보업체는 ‘결혼정보업’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 영업을 하는 업체가 적지 않고, 가입을 원하는 남성들은 업체의 허가 여부에 대해 확인하지 않기 때문에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또 불법 업체는 서로 짜고 조선족 여성을 새터민으로 속여 만남을 주선하기도 한다. 한국 남성은 조선족 여성이 사용하는 연변 사투리와 북한 사투리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점을 이용한 사기 수법이다.

‘북한여성 결혼전문’이라는 업체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한 B씨는 4개월 뒤 아내가 도망가고 나서야 그녀가 새터민이 아닌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뒤 B씨는 웹 사이트에서 새터민과의 결혼에 대해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B씨는 “업체 가입 전 정식 허가를 받은 곳인지 꼭 확인하라”면서 “상대방 여성이 새터민이 맞는지 결혼 전에 확인해야 한다”고 남성들에게 조언했다. 그는 “사기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업체를 찾아갔지만 이미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라며 “여자와 업체가 짜고 나를 속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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