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업체 관리자의 안전관리 소홀과 사고 축소·은폐한 정황 사실로 드러나

지난달 28일 울산 고려아연 황산 유출 사고 배관(왼쪽). 그러나 국과수 감식 결과 'V' 표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V' 표시된 배관(오른쪽)은 열어도 좋다는 원청업체가 표시해 놓은 것으로 사고 당시에 회사 측은 근로자들이 'V' 표시가 없는 배관을 열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1일 본보가 보도한 <고려아연 황산 누출 사고 "책임 축소·은폐 했다">는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울산지부의 주장은 국과수 감식 결과 사실임이 입증됐다.

지난달 28일 울산시 울주군 고려아연 2공장에서 협력업체 근로자 6명이 크게 화상을 입은 황산 누출 사고와 관련해 "원청인 고려아연 측이 사고 책임을 축소·은폐한 정황이 있다"는 노조의 지적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고려아연 황산 누출 사고 당시 근로자들은 작업 허가가 떨어진 'V' 표시의 배관을 열었던 것으로 확인돼 사고 원인으로 원청업체 관리자들의 안전관리 소홀과 사고 은폐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회사 측은 사고 당시 'V' 표시가 안된 멘홀을 열어 사고가 났다며 책임을 작업근로자에게 전가하려 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근로자가 열었던 배관이 'V' 표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울산 울주경찰서는 사고 배관 맨홀을 국과수에 감식 의뢰한 결과, 'V' 표시에 사용된 파란색 페인트와 99% 일치하는 성분이 검출됐다고 6일 밝혔다.

'V' 표시는 설비 정기 개·보수 준비 단계로 원·하청 관리자들이 함께 작업해도 안전하다는 의미로 색칠해 둔 표식이다.

근로자들이 이 표시를 믿고 작업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사고 직후 고려아연 측은 "작업자들이 열면 안 되는 배관을 여는 바람에 났다"면서 근로자를 배치한 하청업체나 작업 근로자들에게 사고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을 했다.

'V' 표시된 배관(오른쪽)은 열어도 좋다는 원청업체가 표시해 놓은 것으로 사고 당시에 회사 측은 근로자들이 'V' 표시가 없는 배관을 열었다고 주장했다.

사고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29일 경찰과 국과수 합동 현장감식이 진행된 후 경찰은 "사고 배관에 'V' 표시가 없다"고 밝혀 원청인 고려아연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듯했다.

일부에선 황산 유출 과정에서 'V' 표시가 지워졌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경찰은 수사의 핵심이 아니라며 이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울산지부는 기자브리핑을 열고 "사고 목격자들이 분명히 'V' 표시를 봤다고 증언하고 있다"며 "사고를 수사하는 경찰이 너무 허술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반발이 거세자 경찰은 사고 맨홀을 국과수에 추가 감식 의뢰했고 유출된 황산이 'V' 표시에 흘러내려 이 표시가 지워질 수 있다는 감식 결과를 받은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V' 표시 존재 여부를 떠나 이번 사고는 황산을 모두 제거하지 않은 상황에서 작업을 지시한 원·하청의 안전관리 소홀 책임이 확실한 만큼 엄정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초 합동 감식에서 경찰이 'V' 표식이 황산에 지워졌을 가능성을 배제해 초기 수사가 안일했다는 시각도 있다.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고려아연 2공장에선 지난 28일 오전 9시 15분께 황산이 유출돼 협력업체 근로자 6명이 화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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