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에게 우리 사회의 미래를 고민할 권리가 있는지 고민했다”
창작과비평 ‘라디오 책다방’ 통해 김영란법 시행 후 첫 만남

김영란 전 대법관은 자신의 저서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와 '책 읽기의 쓸모'를 통해 독자들과 만났다. 김영란법 시행 후 첫 만남이었다.

[일요경제, 손정호 기자] 김영란 전 대법관은 김영란법 시행 후 첫 공식석상에서 대법관 시절 판결의 어려움과 고민에 대해 토로했다. 그런 고민들을 서강대 로스쿨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기 위해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와 ‘책 읽기의 쓸모’라는 책을 집필했다.

서강대 로스쿨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김영란 전 대법관은 6일 오후 7시 반 서울시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 5층 니콜라오홀에서 진행된 창작과비평사의 팟캐스트 방송 ‘라디오 책다방’을 통해 독자들과 즐거운 만남을 가졌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사회의 관심이 뜨겁지만 저자 한 사람으로 평범한 독자들과 대화하는 밤이었다. 

김 전 대법관은 “사람들은 결론만 기억하지 중간 논쟁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다수의견만 알려지지 소수의견까지 쓰는 곳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밖에 없다”며 “언제든지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으로 바뀔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몇 퍼센트 정도는 다수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관 재직 시절 힘들었던 판단으로, 제사 주재자와 사립학교 재단 및 주식회사 지배권 판결을 꼽았다.

그는 “제사 주재자가 협의되지 않을 때는 맞아들과 맞손자가 주재한다”며 “여성 문제 관점에서 딸들은 허순위가 되는 편견이 있다. 이런 문제들을 논의할 때 충분히 토론했는지, 미진하지 않았는지, 우리 사회가 아직 이 단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판결을 할 때 사람들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진행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했다”며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어디까지 고민해야 하나, 그렇게 할 권리가 판사에게 있는가라는 문제도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김 전 대법관은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정치철학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소재로, 우리 사회의 문제와 판결에 대한 생각도 드러냈다.

김 전 대법관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 정의를 효용 측면에서 판단할지 권리나 공동체 미덕에서 판단할지 갈등을 일으키는 장면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며 “성소수자 문제는 개인 인권과 공동체 미덕이 갈등을 일으키는 지점이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체 미덕과 개인의 권리 중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의견이 충돌한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지켜온 공동체의 미덕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며 “개인의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옮겨가는 지점이 있는데, 그런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게 대법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판결이 공개적으로 이뤄지고 외부에서도 논의됐던 점”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법관은 “판사로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고 말하면서 내가 제대로 판결을 하는 것인지 굉장히 두려웠다”며 “이 사람의 말을 들으면 이 사람이 옳은 것 같고 저 사람의 말을 들으면 저 사람이 옳은 것 같았다”고 난처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그는 “어느 날 ‘당신은 이렇게 얘기하고 다른 당신은 이렇게 얘기하는데 내가 누구 말이 맞는지 어떻게 아냐. 내가 신이냐’고 솔직히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며 “‘당신은 이 증거를 내고 다른 당신은 이 증거를 낼 텐데 당신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알지 않느냐. 내가 이 증거를 갖고 내린 결론이 진실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도 이 판결을 꼭 받아보고 싶냐’고 하소연했다”고 말했다. 

그는 “두 분은 그래도 꼭 판결을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며 “어쩔 수 없이 판결을 했다. 판사는 신도, 점쟁이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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