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송되기도 한 근사체험(near-death experienc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근사체험이란 한 마디로 죽음의 체험이다. 심장이 멈추고 호흡이 중단된 사망자가 기적적으로 다시 소생하여 그 사이에 보고 느낀 것을 뜻한다. (의학적으로 죽음은 ‘심장이 멎고 호흡이 정지되며 동공반사가 없는 상태’다.)

 
근사체험의 과학적 타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과학자와 의사들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논쟁과 이견이 많다. 하지만 체험 당사자들은 자신의 체험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으며 확신에 차서 발언한다. 그들은 대체로 삶에 대해 전보다 더 긍정적 태도를 갖게 되었고, 미래에 대해서도 낙관하게 되었으며,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상당히 감소되었다고 한다. 

 
영화 <사랑과 영혼> 속 주인공 샘의 영혼이 죽은 자신의 시신을 보는 것처럼, 사망 상태의 환자는 무중력 상태에 있는 듯 체외이탈 하여 공중에 떠서 자신에게 심폐소생술을 행하는 의료진을 보기도 하고, 어두운 긴 터널을 빠져나가 빛나는 광채에 휩싸여 이미 오래 전에 죽은 가족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기도 한다. 어떤 체험자는 자신의 과거 삶을 파노라마처럼 다시 보았는데, 자신이 잘못한 일을 볼 때에는 극심한 고통을 느꼈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즐거운 기억을 볼 때에는 엄청난 환희와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때문에 이들은 자살이야말로 생의 의미를 망각한 최악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자살은 죽음 이후에도 극심한 고통을 안겨 줄 것이지만, 눈앞의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간적인 삶의 끝에서 만나는 죽음은 그 이후 환희와 희열을 느끼게 할 것이라는 맥락에서다.

 
< 행복 전도사 >

장애를 가진 12살 아들을 홀로 남기고
52살 일용 노동자 윤 모 씨가 자살을 했다
여의도 공원에서 목을 맨 그는
그 전에 소주 한 병을 벌컥 들이키고
새벽 찬 공기를 한 모금 마셨을 것이다
폭행과 절도를 포함해 전과만 10건이나 되는 그는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다’며
‘죽으면 동사무소 분들이 혜택을 받게 해 달라’며
한 생애를 소리 없이 지웠다

다음 날 저녁 방송인 겸 작가 최윤희 씨 부부가
여관방에서 서로 자살을 했다
그녀는 2년 전부터 여기저기 몸에서 경계경보가 울렸고
입원 퇴원 반복하면서 많이 지쳤고
폐에 물이 차서 숨쉬기 힘들었고
700여 가지 통증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여러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행복 전도사가 되었으나
‘완전 건장한 남편은 저 때문에 동반 여행을 떠난다’고 함으로써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뭇사람들에게
행복은 전도체가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 시집 『다큐멘터리의 눈』 중에서

 
다시! 지난 달 30일 인천에서 일가족 3명이 자살했다. 서울과 인천에 무려 15채의 집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연간 4천여만 원이 넘는 이자를 감당할 수 없었던 50대 가장과 그 아내, 어린 딸은 연탄불을 피워놓고 죽음을 청했다. 이들 부부는 2007년경부터 경매에 나온 주택을 잇달아 낙찰 받아 매매 차익으로 재산을 불리려다 오히려 목숨을 내놓고 말았다. 결국은 돈이 이들 가정을 죽음으로 내몬 셈이다.

 
2013년 기준 9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각종 통계를 살펴보면 자살의 주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IMF 사태 직전인 1995년 우리의 자살률은 12.7명이었다. OECD 평균 15.5명보다 낮았다. 그런데 1998년에는 21.7명으로 증가한다. IMF로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직자가 발생하는 경제 위기 속에서 우리는 OECD 국가 자살률 평균을 올리는 역할을 했다. (2003년 카드사태,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그 전후에 비해 자살률이 증가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우리의 자살 관련 지표는 그동안 상황이 더 심각해졌음을 알려준다. 1시간에 거의 2명꼴로 매일 39.5명이 자살하고 있으며, 연간 총 1만4427명이 자살해 전년보다 1.9% 증가했다. OECD 평균의 거의 3배에 달하는 사람이 자살로 생을 마치고 있다는 기록이다.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뒤지는 터키의 1.7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일본(20.9명)과 미국(12.5)보다도 월등히 높다.

 
국회 양승조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사회조사 결과 자살충동원인 1위는 경제적 어려움(39.5%)이었다고 한다.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2.3배 높다는 기록도 있고, 도농 자살률 차이가 5배에 달한다는 기록도 있어 자살의 주원인이 경제 문제에 있음을 더욱 유력하게 만든다. 또한 경제 문제로 자살이 증가하는 현상을 뜻하는 이코노사이드(economy와 suicide의 합성어)란 단어가 소통되는 것도 이의 방증이 아닐까. 

 
최근 들어 ‘죽음의 질’이니 ‘well dying’이니 하는 말들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삶의 질’을 도외시한 채 ‘죽음의 질’을 운운하는 것은 아무래도 몰상식한 처사일 수밖에 없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자살과 죽음의 유혹을 느끼며 하루하루 간신히 버텨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살 예방 활동과 이를 추진할 기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등 자살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3조원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악화가 악화를 낳는 악순환을 막아낼 근본적 정책과 지속적 실천이 시급하다. 그것은 곧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노력일 수밖에 없다.

 
저소득층을 위한 기초생활수급제도도 있고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 공무원연금 등 연금제도도 다양하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교육까지 부분 또는 전면 시행되고 있으며 보건·복지·교육 예산만 연간 100조 원 이상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살 행렬을 그들 개개인의 탓으로 돌리기엔 국가의 책무가 너무 막중하다.

 
거금 2400여 년 전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만나 조언한 것도 바로 왕조의 이(利)가 아니라 백성의 이로움이었으며, 인정을 베풀어야 백성들이 흩어지지 않고 모여들 것이라 했다. 국가의 존재 근거는 곧 국민의 삶이며, ‘삶의 질’이다.
저작권자 © 일요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