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개념적으로 신화는 역사와 엄격히 구분된다. 그리해 벤야민은 신화에 반하는 역사의 사유를 다름 아닌 파시즘 전파의 위기상황에서 영웅적으로 전개한 바 있다. 역사(철학)에 의한 신화(선전)의 배격을 위해서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자본국가 현실에서 역사는 신화로부터 완전히 유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는 신화와 겹친다. 아니, 신화가 역사를 대체하는 비정상의 상황이 야기되기도 한다. 전체주의가 정확히 그러하다. 선덕여왕 배후 미실의 신화적인 이야기가 현행의 민주공화국에서 박근혜 대통령 배후 순실이라는 역사적 진실로 재연되는 바로 지금 우리의 비극적인 사정이 이를 또다시 입증해준다. 70년대 유신, 근대적 파시즘의 환상적 과거가 2016년 포스트모던 대한민국의 우리를 고통에 빠트린다. 마르크스의 예언대로다. 

‘구국’의 환상적 망탈리테, 지배 이데올로기, 권력 장치로 결속된 최순실과 박근혜 두 사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결국은 일개 대통령의 정치적 실패가 아닌, 국정농단, 헌정파탄, 공화국 위기라는 역사적 참사를 낳는다. 분노와 환멸은 더 이상 상황을 인내‧용인할 수 있는 집단 심리적 임계점을 넘어선다. 대통령 지지도가 영도에 가깝게 추락했다. 이념과 진영을 가리지 않고, 대중들이 들고 일어났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나이와 성별 차이를 넘어, 지역을 가로지르는 ‘하야하라!’는 목소리다. 모든 매체들이 이구동성으로 정권을 비판한다. 정권의 몰락이다. 카리스마 대통령의 순식간의 추락이었다. 또 다른 예외상태, 비상시국이다.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던 최순실과 그 일당들이 속속 검찰에 소환되고 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청와대 ‘왕수석’과 ‘문고리 3인방’이라는 자들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검찰에 불려간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고, 사죄를 표하며, 용서를 구하기도 할 것이다. 반대로 어떤 자는 까딱하지 않고 꼿꼿이 기자를 째려보거나 검찰을 들락거릴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대통령은 자신도 최순실에 의해 배신을 당한 피해자처럼 행세한다. 위축된 자세로 동정의 여론을 구한다. 그러면서 역전을 노린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시중의 반응은 더욱 싸늘해진다. 사람들은 이제 최순실이 아닌 박근혜라는 이름을 외친다. 최순실 게이트가 아닌 박근혜 게이트라 명명한다. 대통령의 조사와 처벌, 탄핵, 하야를 요구한다.
   
그래서 이제 상황은 분명히 파악됐고 서서히 정리해갈 일만 남았는가? 최순실의 엄벌과 대통령의 조사‧탄핵‧하야로 끝내면 되는가? 이 글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발제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아직 많은 게 남았다. 다름 아닌, 최순실과 박근혜에 가려진 또 다른 이름이 드러내는 작업이다. 비선/실세와 대통령/정권과 연동된, 또 다른 책임 당사자를 더욱 철저하게 폭로해야 한다. 사태에 깊이 연루된, 이재용과 삼성, 재벌, 자본의 진상 규명이다. 승마협회, 마사회, 현명관과 최순실의 커넥션 수사다. 비로소 조금씩 검찰이 들여다보기 시작한 이들의 비리, 지금까지는 오직 파편적으로만 일부 매체에 의해 언급됐던 저들의 부정을 이제 우리가 총체적으로,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때다. 바로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지금까지의 주도적, 상투적 프레임에 삼성/재벌/자본을 명확하게 끼워 넣는, 새겨 넣는 작업이다. 그럼으로써 논의의 틀을 진상에 맞게 확장하고 보충하는 프로젝트다. 왜 그래야 하는가? 다음의 이야기로 자답한다. 청와대로부터 엄청난 양의 자료가 최순실에게 넘어갔다. 국방, 외교 등과 관련된 매우 민감한 문건들의 있을 수 없는 유출이다. 이를 기초로 현실의 美室은 신라가 아닌 대한민국 현실의 공주를 대리했다. 국가시스템을 완벽히 유린했다. 민주공화국체제를, 헌법질서를 근간에서부터 해체했다. 그런데도 이 범죄행위에 대해 최순실이나 대통령 그 누구도 처벌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이야기가 솔솔 나온다.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그래서 씩씩 화만 내고 있을 것인가? 그럴 수 없다.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방향을 바꿔 이렇게 질문해보자. 상상해보자. 청와대 문고리 중 한 명이 매일같이 제공했다는 자료들은 과연 최순실의 컴퓨터에만 저장되고 만 것일까? 비선실세가 문건의 최종 귀착점이었을까? 그녀로부터의 유출, 또는 그녀와 누군가의 공유는 없었을까? 만약 이 자료들이 최순실 일당을 거쳐 재벌이나 여타의 세력 손에 흘러들어갔다면? 이 자료들을 근거로, 대기업들이, 전경련이, 여타의 제 권력들이 국가정책결정과정에 개입하고 관여했다면?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가? 없다면, 이에 대한 조사와 처벌을 더욱 강력하게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검찰이 드디어 삼성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사옥을 포함해 한국승마협회, 마사회 등 총 아홉 곳을 압수수색했다. 삼성의 돈이 최순실‧정유라에게 입금된 흔적을 쫒아 계좌추적이 개시된다. 승마협회 관련 삼성전자 인사들의 검찰 소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고, 대가성에 따른 뇌물공여죄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삼성 이재용을 비롯해 현대, 한화 등 대통령과 독대했다는 재벌의 총수들이 속속 검찰에 참고인으로 걸음을 하고 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간다. 그러하니 이제 우리는 검찰이 삼성을 어떻게 손볼지 지켜보면 되는가? 결국 삼성과 최순실, 대통령의 커넥션이 검찰조사를 통해 만천하에 밝혀지는 기적을 우리는 경험하게 될 것인가?  
   
분명 한국의 재벌들은 지금 전전긍긍 중일 것이다. 특히 삼성은 한화와 더불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승마협회 회장사를 주고받은 이 두 그룹은 박근혜 정권 들어 더욱 크게 성장한다. 2012년에 비해 올해의 자산규모가 각각 36.2%, 59.5%씩 증가했다. 10대 그룹 가운데 한화가 자산성장률 1위, 그 뒤를 삼성그룹이 차지했다. 이 두 그룹은 현 정권 들어 방산과 화학 계열사를 놓고 빅딜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를 통해 삼성그룹은 이재용의 시대를 열기 위한 사업구조 개편의 초석을 깔고, 한화그룹은 방산과 화학 부문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이들의 성공 배후에 정말로 최순실이 있었던 것일까? 그 진실이 만천하에 이번에는 검찰의 손에 몽땅 다, 속 시원히 밝혀질 것인가?
   
그러하지 않을 것이다. 큰 벽이 버티고 있다. 더 이상의 비화를 원치 않는 자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담론의 확장을, 프레임의 변화를 막아내는 데 재벌들은 보지한 총력을 집중할 것이다. 언론의 프레임을 계속해서 최순실, 박근혜로만 한정시키고자, 삼성을 비롯한 재벌 당사자들이 말 그대로 똘똘 뭉쳐 움직일 것이다. 광고로 압박하고 연줄로 읍소할 것이다. 자본권력의 힘은 막강하다. 국가 배후의 자본이다. 그래서 검찰의 조사도 어물쩍 끝날 공산이 크다. 사회적 공분을 틀어막는 수준에서다. 여론의 분노를 각하에게서 빼내는 정도에서다. 대충 이야기하고 수사하는 척은 하겠지만, 철저하게 조사하고 중대하게 징계하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에 그러했듯이, 현재도 그러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에 맞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최순실과 삼성의 커넥션, 이재용과 각하의 커넥션, 재벌-비선실세-국가의 커넥션을 더욱 비화시키는 일이다. 삼성에만 국한되지 않는 시시비비다. 여러 재벌들이 미르와 K스포츠를 통해 최순실/정권/실세에 줄을 대려고 했으며, 한화는 삼성에 앞서 그 접선에 성공한 바 있다. 이 실상을 계속해 폭로해야 한다. 실세와 공모하고 그럼으로써 민주/정치에 반역한 자본의 역사를 꼼꼼히 정리해야 한다. 자본/국가의 무마책에 맞선 사회적 담론의 돌진을 희망하면서, 진실의 뾰쪽한 칼날로서 삼성과 재벌의 실세를 우리가 철저히 조사해가야 한다.


-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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