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범 맥신코리아 대표

잠을 제대로 자기 시작한 것이 불과 4년 전이다. 서울에서 같이 유학한 6살 터울의 형이 불면증이 있었던 영향으로 10살 때부터 올빼미와 같은 생활을 했다. 이후 무려 36년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새벽에 잠이 들거나, 간혹 일찍 자도 새벽에 깨서 잠을 설칠 때가 다반사였다. 그러니 낮 시간에는 늘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지냈고, 당연히 집중력은 매우 낮았다. 20대 이후 눈은 늘 충혈되어 있었고, 눈을 심하게 자주 깜빡거렸다. ‘모자란 사람’처럼 보인 것은 당연했고, 대학에서 강의할 때, 그리고 강연을 하거나 방송 인터뷰를 할 때는 더 심해졌었다. 커다란 콤플렉스였고, 만나는 사람마다 “굉장히 피곤해 보인다”란 말에 “아니요, 원래 잘 충혈됩니다”고 얼버무렸었다. 

사업실패로 인생 최악의 시기를 겪던 4년 전 우연히 단전호흡을 시작했다. 당시 120kg 초고도비만 뚱보였는데 6개월 만에 45kg 감량했다. 온라인평판관리라는 새로운 사업에서 다시 재기했고, 매일 책을 읽지 않으면 목에 가시가 돋칠 정도로 하루하루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36년간 밤낮이 바뀌었던 생활패턴이 제대로 돌아왔다. ‘비정상의 정상화’까지 무려 36년이 걸린 것이다. 

잠은 행복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않는 삶은 불행하다.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지수가 네팔보다 낮은 것은 복지수당이나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라 바로 수면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행복지수와 수면시간은 정확히 반비례한다. 수면이 부족하면 당연히 업무‧공부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커피, 에너지음료와 같은 각성제로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게 현대인의 일상이다. 이런 각성제는 다시 깊은 잠을 방해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처방이다. 

부족한 잠은 자살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자살은 마음의 병이다. 우리나라 한해 자살로 사망하는 수는 대략 1만4000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약 80%의 사람들이 우울증을 앓았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75%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즉 자살자의 약 60%가 불면증 환자라는 결론이 나온다. 2013년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중 우울증 등을 앓는 정신건강 고위험자는 약 368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불면증과 우울증 환자 조기 치료가 자살률은 낮추는 좋은 해결책이다. 

지난 13일 ‘중앙선데이’에 따르면, 최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한 종교계 인사가 건 낸 “잠은 잘 주무시나 봅니다”란 인사말에 박 대통령이 미소를 지으며 “잠이 보약이에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 브리핑에서 “수능을 5일 앞둔 고3 수험생은 ‘나라가 걱정이다’며 날밤 새고 있는데 대통령은 ‘잠이 보약’이란 말을 하고 계신다. 한심하고, 부끄러울 뿐”이라고 비판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대한민국이 난리다. 12일에는 100만 명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쳤고, 대통령 지지율은 5%로 최악의 상태이다. 박 대통령은 어떤 결단을 내릴 것이며, 향후 정국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박 대통령처럼 부모가 모두 흉탄에 목숨을 잃은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더구나 10·26사태 이후 오랜 세월을 가택에 연금당해 사실상 감옥생활을 했다. 1991년 박 대통령이 40세 때 “하고 싶은 일이나 꿈이 없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십분 이해가 되는 말이다. 그러던 그가 이듬해 갑자기 ‘마음의 평화’를 얘기하며 희망적인 삶에 대해 일기에 쓰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1991년부터 단전호흡을 시작했고, 이것이 그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필자의 추측이다. 박 대통령은 매일 새벽 국선도라는 기(氣)운동을 3시간 정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의 체력과 정신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단전호흡을 하면 잠을 ‘잘’ 자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박 대통령 말대로 ‘잠은 보약’이기 때문에 잠은 정신을 맑게 하고 집중력을 극대화시킨다. 만취했을 때도, 감기에 앓을 때도, 이별의 아픔에도, 잠을 ‘잘’ 자면 대부분 치유된다. 수면의 신비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 한동안 부끄러움과 비통함에 잠 못 이루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말에 버금가는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라는 실언도 했을 것이다. 단전호흡을 하고 잠을 ‘잘’ 자는 박 대통령이 자살과 같은 극단적이고 어리석은 선택을 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그에게는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이 있기 때문이다. 단전호흡으로 평정심을 되찾았을 박 대통령은 긴 호흡으로 국가적 위기 대처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광화문에 100만 명이 아니라 1000만 명이 모이더라도, 지지율이 5%에서 0.1%로 떨어지더라도 스스로 대통령직은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하야는 대한민국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시 ‘궐위’로 60일 내에 치러지는 보궐선거에서는 진보진영 후보 당선이 확실시된다. 주적 북한에게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찬반을 물어보았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나 북핵으로 한반도가 일촉즉발 위기인 상황에서 “북한과 경제·문화 협력 관계 구축”을 주장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통령이 될 확률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이 시나리오는 북한 김정은 노동위원장에게 최대 희소식이 될 것이며, 북한 비핵화는 물거품이 될 것이다. 보수 강경파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와 한국 진보 대통령과의 불협화음도 강 건너 불 보듯이 뻔하다. 

이와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위중하게 인식하고 있을 박 대통령의 선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대한민국호(號)의 키를 놓지 않을 것이다. 탄핵을 당하더라도 심지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가야 할 몇 마일’을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갈 것이다.   

필자는 언론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대선 1년 전 예측하고, 트럼트 당선자의 당선을 미 대선 6개월 전 정확히 맞췄었다. 박 대통령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작금의 사태보다 더 큰 인생의 위기를 수차례 겪었던 사람이다. 사람의 진면목은 위기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만약 박 대통령이 이 위기를 극복한다면 궁극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거듭날 것이다. 10년 뒤 사람들은 박 대통령을 ‘북한의 핵무장을 해체시키고, 통일의 시금석을 놓은 대통령’으로 기억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최순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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