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이배 국민의당 의원

11월 18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보도자료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을 위한 공개 의견수렴 절차 진행’을 통해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안)’을 공개하고 12월 11일까지 공식 의견수렴 절차에 들어갔다. 금융위원회의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 방침 공표 후 2년 만이다.

이번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제정(안)이 금융선진국에 비해 미흡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도입 그 자체에 의의가 있음을 감안할 때 조속히 확정되고 시행되어 기관투자자들의 수탁자로서의 책임성 강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최근 새롭게 드러나는 정황 중 하나가, 작년 7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권 강화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앞두고 청와대와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 이사장)이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의(이하 전문위원회) 위원을 접촉하여 찬성을 종용하였고, 전문위원회가 합병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자 전문위원회를 배제한 채 기금운용본부 내의 투자위원회 자체 결정으로 찬성을 의결했다는 것이다. 

결국 삼성물산 합병 안건은 찬성 69.53%로, 합병 가결을 위해 필요한 최소 지분 66.67%를 2.86%p 차이로 가까스로 넘겨 합병이 성사되었지만, 국민연금과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론에 따르면, 청와대와 문형표 전 장관의 개입 의혹뿐만 아니라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 합병 일주일 후 대통령을 독대한 사실도 확인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삼성그룹의 2015년 10월 27일 미르재단 125억 원 출연 및 올해 1월 12일 케이스포츠재단 79억 원 출연 등 재벌로는 가장 많은 204억 원 기부, 정유라 승마훈련 지원으로 약 35억 원을 지원한 것으로 볼 때, 청와대와 문형표 전 장관의 국민연금에 대한 찬성 종용은 최순실 씨 측에 대한 삼성의 지원 대가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500조원이 넘는 국민의 소중한 연금재산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이를 빌미로 한 정권 비선실세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오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언론에서는 연일 삼성물산 합병 결정으로 인한 국민연금 손해액 추정을 경쟁적으로 하고 있지만, 국민연금의 비합리적·예측불가능한 결정으로 인한 신뢰 추락은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을 만큼 엄청난 것이다.

한편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건 결정에 있어 정치권의 영향력 행사가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로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의 제정이 지연된 것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견해도 있다. 

기본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하여 규정하는 것인데, 이는 투자대상회사의 중장기적인 가치 제고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함으로써 고객과 최종 수익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 있다. 따라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투자대상회사의의 ‘대화와 소통’(engagement)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이는 평상시 원활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의미한다. 즉 삼성물산 합병건에서 보듯이 기관투자자와 별다른 의사소통도 없던 회사가 총수일가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불공정한 합병비율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은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engagement 활동을 꾸준히 했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단순히 회사의 IR에 참석하거나 회사 방문 및 실무자 면담, 의결권 행사 등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자체 의결권 행사 지침을 스튜어드십 코드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도 없다.

최근 삼성물산 합병건 재조명으로 인해 국민연금 의사결정상의 문제점이 부각되고 있지만, 당시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형태에 대해서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삼성물산 합병건과 관련하여 의결권행사 내역을 공시한 국내 49개 기관투자자들 중 합병건에 대해 반대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반면 국민연금이 의결권행사와 관련한 자문을 받고 있는 ISS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합병 비율의 불공정성을 이유로 반대했고, 다른 의결권 자문기관인 Glass Lewis, 서스틴베스트 등도 합병에 대해 반대 권고하였다. 

기관투자자들이 평소에 투자대상회사 경영진과 대화와 소통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했더라면, 회사가 일방적으로 합병비율을 정하지도 못했을 것이며, 설령 불공정한 합병 비율을 결정했더라도 문제해결 시도를 위해 합병비율이 조정됐을 가능성이 크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2의 삼성물산 합병 논란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시행이 반드시 필요하며, 국내 주식시장의 큰 손이자 책임투자를 선도해야 할 국민연금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가장 먼저 스튜어드십 코드의 채택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비례대표)

저작권자 © 일요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