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등 환경규제 강화에 자동차업체 전기차 집중 투자
도요타, 전기차로 방향 바꿔 배터리도 개발

[일요경제] 글로벌 자동차 제작사들의 전기차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유럽과 미국, 중국 등지에서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배출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자동차 제작사들은 사실상 의무적으로 전기차를 개발할 수밖에 없어서다.

세계 전기차 시장 1위인 중국에서는 기존 업체들 외에 전기차 스타트업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독일의 폴크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나 미국 GM 등도 전기차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일본은 일찌감치 전기차를 시작한 닛산 외에 도요타와 혼다까지 양산 경쟁에 가세했다.
특히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이면서 하이브리드차의 선구자인 도요타는 2020년까지 전기차 대량생산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그간 도요타는 궁극적 친환경차로 수소연료전지차를 내세웠지만 결국 대세로 자리 잡은 전기차를 받아들였다. 도요타가 수소차에서 전기차로 방향을 튼 것이라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도요타는 우선 사내에 소규모 전기차 개발팀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또 향상된 성능의 전기차 리튬이온 배터리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지난 24일 발표했다. 이를 통해 지금보다 주행거리가 최대 15% 늘어나는 배터리를 2∼3년 안에 상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도요타는 기대했다.

도요타는 오랫동안 주행거리와 충전시간 등의 한계를 이유로 전기차 개발에 미온적이었다.

이 회사는 미국의 전기차업체 테슬라가 만든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라브4 전기 SUV를 미국에서 소량으로 팔다 단종한 적이 있다.

도요타는 지난해 1회 충전으로 550㎞를 달릴 수 있고 빠르면 3분 만에 충전할 수 있는 수소차 '미라이'를 출시했다. 하지만 수소차는 여전히 비싸고 인프라의 뒷받침도 부족하다. '미래'라는 뜻의 미라이는 지난해 출시 이후 가격을 내렸지만 1천대도 팔리지 않았다.

도요타의 전기차 개발 결정에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의 환경규제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제 매체 차이신(Caixin)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순수 전기차나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수소차 등의 판매 비중을 2018년까지 전체의 8% 이상으로 높이지 못하는 메이커는 벌칙을 받게 하는 내용의 초안을 마련했다. 이 비중은 2020년에는 12%로 높아진다.

중국에서 신에너지차로 불리는 이런 차량의 능력이 없는 자동차 메이커는 사실상 금지되는 것이라고 중국 국영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일본 업체 가운데 도요타와 함께 전기차에 회의적이었던 마쓰다도 전기차를 2019년에 양산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도요타와 마쓰다는 중국과 미국의 엄격한 이산화탄소 기준을 맞추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혼다는 2030년에 순수 전기차 또는 부분 전기차의 비중을 전체의 30%로 높일 계획이라고 올해 앞서 공언한 바 있다. 전기차가 15%,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가 15%를 각각 차지한다.

일본 메이커 가운데 닛산은 기술과 노하우에서 세계적으로 앞서 있다. 닛산은 베스트셀링 전기차 모델 리프를 보유하고 있다.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의 카를로스 곤 CEO는 중국에서 가격을 8천달러(940만원)까지 낮춘 전기차를 몇 년 안에 팔 것이라고 최근 말했다.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떠올랐다.

중국은 자동차 번호판 경매 제도로 오염 많은 차량을 억제하고 전기차에 후한 보조금을 준다. 그 결과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힘차다.

중국에서는 BYD(비야디)를 비롯해 BAIC(베이징자동차), SAIC(상하이자동차), JAC(장화이자동차) 등이 전기차를 생산하는 대표적 업체다.

억만장자 투자자 워런 버핏이 투자한 회사로 유명했으며 삼성전자로부터도 약 5천억원을 투자받은 BYD는 한국에서 전기버스를 팔려고 최근 한국에 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중국의 전기차 스타트업도 부쩍 늘었다. 2014년 설립된 넥스트 EV는 지난 21일 '니오'(NIO)라는 브랜드와 함께 EP9이라는 이름의 전기 슈퍼카를 공개했다.

10월에 독일 뉘르부르크링의 20.8㎞ 서킷을 전기차 최고 기록인 7분 5초에 주파한 이 차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기차'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EP9은 1천390 마력의 엔진을 갖췄으며 출발 후 시속 60마일(96.6㎞)까지 도달하는 데 2.7초 걸리고 최고 시속은 313㎞다. 1회 충전에 427㎞를 가고 완전 충전에 45분이 걸린다.

포브스에 따르면 EP9은 1대 생산 비용만 대당 120만 달러다. 내년에 중국을 시작으로 세계 시장까지 판매가 확대될 예정이다.

한국은 기술이나 물량에서 훨씬 앞선 다른 나라들을 뒤늦게 따라잡아야 할 처지다.

현대차가 올해 내놓은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주행거리가 191㎞로 제주도 일주가 가능한 수준이다.

현대차도 도요타처럼 수소차인 투싼 ix35가 있지만, 판매량은 미미하다.

현대차는 2018년을 목표로 1회 충전 주행거리 300km 이상의 전기차를 개발하고 있다.

한국 시장의 전기차 연간 판매량은 고작 3천대 수준이다. 다만 내년에 테슬라의 상륙과 주행거리 383㎞인 GM 볼트 EV의 출시를 계기로 전기차에 대한 관심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항구 한국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대차는 돈이 안 된다고 전기차를 소홀히 했고 학계나 연구계에서도 밥그릇 싸움 때문에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았다"면서 "보조금 받으면 580만원 정도밖에 안 되는 싸구려 전기차가 중국에서 들어오면 우리 업계는 테슬라·볼트와 중국산 사이에 낀 넛크래커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최대 업체인 재규어 랜드로버는 최근 로스앤젤레스 모터쇼에서 자사의 첫 전기차(I-페이스)를 공개했다. 이 SUV는 1회 충전으로 500km 이상 주행할 수 있다. 재규어는 2018년 하반기에 이 전기차의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 9월 2025년까지 EQ라는 서브브랜드로 10종의 전기차를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디젤 스캔들로 홍역을 앓고 있는 폴크스바겐은 10년 안에 전기차 리더로 우뚝 서고 2025년에 판매량의 4분의 1을 전기차로 채우는 것이 목표다. 폴크스바겐은 전기차 생산 등에 35억 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폴크스바겐은 2020년에 전기차 양산을 시작한다. 헤르베르트 디스 폴크스바겐 브랜드 최고경영자는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틈새시장이 아니라 자동차 산업의 중심을 공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테슬라는 218년까지 연간 생산 대수를 5만대로 2015년보다 10배 늘릴 계획이다.

소비자들은 아직 전기차 구매에 소극적이지만 자동차 제작사들은 각국 정부의 규제 강화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업체들은 전기차의 미래를 보고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배터리가 싸지고 성능이 향상되면 전기차 가격이 내려가고 주행거리가 늘어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올해 세계에서 판매된 자동차는 100만대가 채 안 된다. 하지만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도 2040년 4100만대로 글로벌 판매량의 35%를 전기차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세계 에너지 시장 관련 보고서에서 연비 기준 강화와 세제 혜택 등으로 전기차 혁명이 곧 일어나 가솔린 수요가 정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했다.

IEA는 현재 세계 도로 위에 130만대의 전기차가 있는데 2025년에는 3000만대, 2040년에는 1억5000만대의 전기차가 도로를 달리게 될 것이라고 봤다.

저작권자 © 일요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