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원 “영업비밀 이유로 공개 않은 내용에 보호구 지급여부‧국소배기장치 등도 있어”
임자운 “삼성전자‧고용부, AP의 삼성 영업비밀 의혹보도 반박했지만 거짓”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정 화학물질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해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이 어렵기 때문에, 영업비밀에 대한 국제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회에서 제기됐다. (사진=손정호 기자)

[일요경제 = 손정호 기자]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정 중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 거부해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의 산재신청이 어려워, 영업비밀에 대한 국제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삼성 반도체 공장의 직업병 문제가 최근 다시 불거진 이유는 최순실 씨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통한 대기업 모금과 정경유착 의혹 때문. 삼성전자가 직업병 노동자들을 위해 1000억 원 규모의 재단 설립을 약속했다가 거부하고, 개별 보상으로 방향을 선회했는데 이 시기에 최순실 씨와 정유라 씨에게 수십억 원을 입금한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이런 주장은 29일 서울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실과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 공동 주최로 열린 ‘끝나지 않은 삼성 직업병 계속되는 위험은폐, 과연 영업비밀인가’ 토론회에서 나왔다. 

강병원 의원은 “반도체 산업이 청정산업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노동자들은 백혈병, 폐암, 뇌종양, 루게릭 등 희귀암과 중증질환 등 많은 직업성 질병에 시달린다”며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재 승인을 위해 반올림이 꾸준히 노력했지만 현재 산재법 체계에서 업무와 질병간 인과관계는 노동자가 입증해야 했기에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화학물질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며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은 내용에는 보호구 지급여부, 국소배기장치 등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고용노동부는 강 의원이 이런 내용을 지적하기 전까지 삼성이 제출한 안전보건진단보고서에서 영업비밀로 가린 내용이 무엇인지 내용조차 모르고 있었다.

아울러 그는 다른 기업이 알면 안 되는 핵심 영업기밀을 알려달라고 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이 사용했던 화학물질과 앞으로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공개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의원 측은 회사가 공개하지 않을 영업비밀 기준을 국제적 기준에 맞춰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 “삼성전자‧고용부, AP의 삼성 영업비밀 의혹보도 반박했지만 거짓”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글로벌 해외통신사 AP가 삼성의 영업비밀 의혹을 파헤치는 기사를 작성해, 삼성전자와 고용부가 반박했지만 이는 거짓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반올림 상임활동가인 임자운 변호사는 “올해 8월 AP가 ‘삼성의 영업 비밀’ 기사를 통해 반도체 직업병 문제와 관련해 삼성과 정부의 정보 은폐를 비판했다”며 “삼성전자는 즉각 모든 화학물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에 협조했고 계속 그럴 것이라고 해명했고 고용노동부도 법령에 맞게 해왔다고 반박했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2007년 11월부터 삼성반도체·LCD 노동자 56명의 산재신청과 19명의 산재소송을 직접 대리하거나 지원했는데, 지난 9년의 산재인정 투쟁은 삼성 영업비밀과의 싸움이었다”며 “삼성은 소소한 것까지 감추려했고 고용부는 그런 삼성을 적극 지원했으며, 삼성전자와 고용부의 반박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임 변호사는 삼성전자와 고용부의 반도체‧LCD 공장 위험 은폐 사례로 삼성반도체·LCD 공장에 대한 △안전보건 진단보고서 △작업환경측정 보고서 △가스 및 화학물질 누출 감지 시스템 기록 등을 꼽았다.

‘안전보건 진단보고서’는 고용부 장관이 산안전보건법에 따라 진단 명령을 내린 사업장에 대해 산업안전보건공단 등이 안전보건 관리 실태를 점검한 후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을 기록한 문서다.

임 변호사는 2013년 1월 삼성반도체 화성 공장에서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해 노동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상해를 입어, 고용부가 화성공장에 특별감독을 실시해 1934건(공장 내 협력업체 위반건수 합하면 200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보고서를 삼성전자와 고용부가 각각 1부씩 보관해, 산재소송 중인 법원이 여러 차례 삼성전자와 고용부 모두에게 보고서 제출을 요청했으나 양측 모두 거부했다”고 말했다. 삼성의 영업비밀 또는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는 “직업병 피해자와 공장 인근 주민들이 함께 고용부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마찬가지였다”며 “단 한 번 예외가 있었는데, 삼성LCD 노동자의 희귀질환에 관한 산재소송 법원이 고용부 천안지청에게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에 대한 안전보건진단 보고서 제출을 요청했고 천안지청이 영업비밀 해당 부분을 가리고 제출한다며 보고서 일부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작업환경측정 보고서’는 190여종 측정대상 유해인자의 노출 실태 관리‧감독에 대한 문건으로, 임 변호사는 해당 작업장 근로자들에게 공개돼야 하는 자료이고 다른 사업장의 경우 산재 심사나 소송 과정에서 논란 없이 공개되지만 삼성전자는 이 보고서를 영업비밀로 분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산재소송에서 법원이 삼성전자에게 재해자가 근무했던 사업장 보고서 제출을 요청하자 삼성전자는 보고서 원문이 아닌 측정 결과만 임의로 정리한 표를 제출하거나 주요 내용이 삭제된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올해 10월 기준 10건의 산재소송에서 법원이 고용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 등에 재해자의 업무환경에 관한 질의나 자료제출 요청을 35번 했는데, 고용부 등이 25건(71%)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않거나 자료 제출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용부가 법원이나 국회의 요청에 따라 자료를 제출할 때 그 자료 중 어느 부분을 은폐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삼성전자에 맡겨져 있었다”며 “삼성전자가 가리고 싶은 부분을 다 가리고 자료를 넘기면 고용부는 그 자료를 그대로 제출만 했다”고 말했다.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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