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호 기자

[일요경제=손정호 기자] 국토교통부 산하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자동차리콜센터는 지난 2일 홈페이지의 ‘진행 중인 리콜’을 통해 현대자동차 싼타페 1차종의 승객감지장치 제어유닛 관련 리콜을 알렸다. 리콜 대상 차량의 생산기간은 2015년 5월 27일부터 6월 5일까지로, 시정기간은 작년 10월 21일부터였다. 대수는 66대, 결함 내용은 승객감지장치 제어 유닛 설정 오류로 충돌시 동승자석의 에어백이 미전개될 가능성이었다.     

이 리콜 정보는 최초 시정기간으로부터 두 달이 더 지나서야 자동차리콜센터에 기록됐다. 한국토요타자동차의 ‘렉서스 RX350, RX450h - 시트 헤드레스트 관련 리콜’ 정보가 시정기간인 1월 5일 이전인 2일에 기록된 것과 비교해 상당히 늦은 감이 있다.

이는 현대차의 결함 은폐 의혹을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과 자동차안전연구원(KATRI)에 제보했다가 해고된 김광호 전 부장이 제기한 31가지 문제 중 하나였다. 

김 전 부장은 2일 자동차리콜센터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현대차 싼타페 66대의 리콜에 대해, 해당 기간 생산된 차량은 2360대 정도인데 나머지는 재고이고 고객에게 판매된 차량이 66대라고 설명했다. 리콜 등 조치를 하고 싶어도 판매된 차량은 고객들에게 의무적으로 연락해야 하는 등 절차가 있어서 쉽게 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광호 전 현대차 부장이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에 현대차의 결함 은폐 의혹을 제보한 후의 모습. 그는 경력 25년의 베테랑 엔지니어다. (사진=김광호 전 부장 제공)

내부고발 후 해고된 그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과 우리나라 자동차안전연구원에 현대차의 결함 은폐 의혹을 제보했고, 해당 내용과 관련해 국토부 장관이 현대차를 검찰에 고발한 사건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현대차 리콜 은폐 의혹에 대한 내부고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김 전 부장은 작년 10월 1일 이 문제를 외부 기관에 고발했고, 현대차는 김 전 부장이 언론 등에도 제보를 하자 리콜 관련 결함을 보고하지 않은 문제가 불거져 제재 조치가 커질 것을 우려해 그중 싼타페 일부를 리콜 조치했다. 국토부는 현대차가 결함에 대해 국토부에 신고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는 부분을 시행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이원희 현대차 사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담당 직원의 단순한 신고 누락이라는 입장이다. 

김 전 부장은 엔지니어로 25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이다. 그는 품질관리부서로 이동한 후 현대차가 수십 년 동안 많은 리콜 대상 결함 내용을 은폐해온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서 먼저 사내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사내에서 그의 주장이 통하지 않아 작년 10월 1일 정부기관에 제보했고 한 달 뒤인 11월 2일 해고됐다. 

그는 지난달 13일 <일요경제>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현대차 본부장 체제의 비효율성으로, 한 사람이 신차 양산과 리콜을 모두 오너에게 알려야 해서 리콜을 보고할 경우 해고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리콜 문제를 사내에서 공론화하지 않고 쉬쉬하면서 은폐하는 문화가 관행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주장이다.

6일 김 전 부장은 “다른 주어진 일이 없어서 그냥 집에 있는데 시간 보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25년간 현대차를 위해 엔지니어로 일해 온 김 전 부장, 회사의 발전을 위해 외부에 제보를 한 후에도 해고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그의 공허한 겨울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제조사의 문제로 소비자가 피해를 당해도 소비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며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힘든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 시행 중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나 집단소송제 등이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로 1112명이 사망해도 오랜 싸움 끝에야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데 그 처벌 수위도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교통사고로 사용자와 주변인들을 죽음과 절망에 빠트릴 수 있는 자동차 결함 문제 은폐한 의혹에 대해 제보하면 해고되는 우리나라에도 소비자의 봄은 오는지 자문해 볼 때이다. 규모의 경제 성장에는 성공했지만, 선진국에 비해 소비자 보호제도가 미비한 우리나라 경제가 이대로 간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한계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미한 수준이라도 성장이 없이 공회전만 한다면 ‘한강의 기적’이 양극화 심화로 표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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