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호 기자

[일요경제=손정호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특별검사팀에 피의자 소환됐다. 특검은 삼성그룹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대가를 바라고 두 재단에 204억원을 기부하고,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 대한 개별 지원도 한 것으로 보고 있어서 이 부회장이 구속기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검은 두 재단에 기부한 현대자동차그룹과 SK, 롯데 등 다른 재벌 대기업에 대해서도 일괄적으로 뇌물죄를 적용해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과 뇌물죄 혐의를 받고 있는 다른 대기업들 모두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것으로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는 입장이만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진 한국 정치, 경제의 슬픈 초상화다. 

영국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 나오는 주인공 도리안 그레이를 보는 것 같다. 도리안 그레이는 초상화 한 점을 얻는데, 부유한 귀족인 그가 흥청망청 사치스러운 생활과 방탕을 일삼으면 초상화 속 도리안 그레이가 대신 추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도리안 그레이는 사치와 방탕을 멈추지 않다가 초상화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 순간 초상화는 젊어지고 도리안 그레이의 사체는 추한 모습을 변해버린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30대의 눈으로 보는 최순실 게이트의 대규모 정격유착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독일 나치가 유태인 수천만명을 학살한 홀로코스트가 발생한지 아직 100년이 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발생하는 인류와 사회에 대한 충격을 곱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한강의 기적’,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돈을 빌리는 나라에서 제3세계를 지원하는 나라로 탈바꿈한 우리는 부유하지만 비도적인 귀족 청년 도리안 그레이일 뿐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최근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한 경제학자의 연구과제에 ‘동북아시아의 국가 중심 경제발전’이 있었다. 국가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대기업이 부응해 기초를 닦고, 대기업은 국가에게 혜택을 받으며 규모의 성장을 키우는 방식이 유효했던 부분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장년층이 짙은 향수를 가졌던 건 그것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흐른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지식공유 시대, OECD 국가 중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현재의 한국에서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으로 빠르다. 그런데 정치와 법, 경제체제, 사회문화 등 우리의 틀은 아직 새마을운동 시대 즈음인 것으로 보인다. 미스매칭과 부자유, 일그러짐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틀로는 한국의 미래와 선진국 진입, 지속가능한 성장을 말할 수 없다. 글로벌 스탠다드와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성장 문제 등을 생각했을 때 그 정도의 퀀텀점프는 현재로는 어려워 보인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규모의 경제성장과 대기업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규모에 걸맞은 제도와 문화의 성숙, 합법적인 경영과 공평한 규칙에 따른 중소기업과의 거래, 소비자 보호 등 다양한 성장 가능한 변수들을 열어두는 ‘열린 국가’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게 미래를 향한 발전일 것이다. 왜 한국에는 제2, 제3의 삼성과 현대가, 미국의 페이스북이나 중국의 알리바바가 생기지 않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우리는 그만큼 닫혀 있고 새로운 기회를 주지 않는다. 가능성과 상상력을 비효율적이라거나 비상식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기 때문이지는 않을까. 

재벌 대기업은 수많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수준의 가족 방어 논리에서 벗어나, 한국이라는 경제 공동체가 보다 평화롭고 평등하고 자유롭게 성장하기 위해서 어떤 정책적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국가는 100년, 1000년 앞을 내다보고 우리나라와 후대에 필요한 제도와 경제, 사회문화의 기틀이 무엇인지 되새겨봐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의 출구는 여기에 없기 때문이다. 출구가 없는 폐쇄된 사회는 현재 그 성적표가 어떠하든 조금씩 후퇴하거나 병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디스토피아로 갈 것인가, 유토피아로 갈 것인가. 그것은 최순실 게이트 이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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