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신간 '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가' 출간 ‘불평등한 소득, 불편한 노후, 불안한 일자리’에 대한 원인과 해법 진단..."그냥 경제가 아니라 '어떤 경제냐'가 중요"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일요경제=김민선 기자]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부시의 대통령 연임이 유력했던 지난 1992년 미국 대선 당시 빌 클린턴은 이 선거구호 하나로 판을 뒤집고 승리를 거머줬다. 그런데 25년 전 미국 대선판을 흔들어 놨던 선거구호가 조기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에서 화두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제가 주요 아젠다로 떠오를 수밖에 없던 당시 미국의 상황이 현재 한국의 사회·정치적 상황과 오버랩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부시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승리의 축배를 들었지만 국민들은 그에 따른 피로감이 극심했다. 특히 전쟁은 미국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이를 간파한 클린턴은 경제 부흥을 외치며 부시를 누르고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지금 한국도 문제는 경제다. 다만 이제껏 통용되던 경제의 아젠다와는 다르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제는 그냥 경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경제냐'가 중요한 시점에 도래했다.

현대경제연구원 김동열 정책조사실 이사는 신간 『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가』를 통해 2017년 한국 사회를 관통할 경제 아젠다를 제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일요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경제가 중요한지, 성장이 중요한지 누구나 다 안다. 성장을 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다 행복해질 순 없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며 "경제도 똑같은 경제가 아닌 실제 국민들의 행복감과 삶의 질을 개선시켜주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동열 이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책 ‘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가’에서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적인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의 이력이 궁금하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박사과정으로 정책학을 공부했다. 이론적인 것 보다는 손에 잡히는 것을 연구하길 좋아한다. 예를 들면 중소기업, 자동차와 관련돼 현실에 도움이 되는 기술혁신에 대해 연구를 했었다. 요즘은 복지, 규제, 지역특구제도, 고령화에 관한 주제를 다뤘다. 인프라 고령화라는 것도 있는데 교량, 철도, 터널, 건물 등 SOC 시설이 노후되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 시설들이 노후 돼 사고가 많이 나고 있는데 이에 문제제기를 해 대안을 마련하는 데도 연구를 했다. 세월호 참사 때 관련 연구가 인용되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 때 표창을 받기도 했다.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오면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게 무척 불편했다. 여행 전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센터에 “곧 나갑니다”하고 출국신고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행여 동사무소에 출국신고를 하는 것을 깜빡하면 티켓팅을 해주지 않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출국신고를 해야 하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 하여 “왜 이런 식으로 국민들을 괴롭게 하느냐”고 이 부분을 개선하도록 해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고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 그간 국회의원 보좌관부터 연구원 이사까지 다양한 이력이 눈길을 끈다. 

“1992년 국무총리 산하 한국개발연구원 KDI에 있을 때는 『기술혁신과 기업조직』이라는 책을 번역하면서 네트워크라는 단어를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25년 전에는 네트워크라는 단어가 굉장히 생소했다. 인터넷, PC등은 90년대 중반에 와서야 사람들에게 많이 소개가 되었다.

2003년 국회의원 정책보좌관이 되어서는 디지털 콘텐츠를 제대로 육성하기 위한 법안을 만들어 냈었다. 2004년 말 재정경제부 장관의 정책 보좌관일 때는 종합부동산세를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 때 투기가 심해 부동산 가격이 잡히지 않아서 종합부동산세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지금은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수석연구위원, 정책연구실장을 거쳐 정책조사실 이사로 일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김동열 정책조사실 이사가 펴낸 신간 『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가』 책 표지.

- 책에서 ‘지금의 시대정신은 행복한 경제 만들기다’고 정의를 내렸는데, 행복한 경제란 무엇이라고 보는가.

“행복한 경제란게 사실 내가 처음 만든 건 아니다. 전부터 ‘해피노믹스(Happynomics)’라는 연구분야가 있었다. 경제학자들이 경제학 개론서에서처럼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느냐’ 같은 질문에만 몰두해 있다가 ‘경제는 발전하는데 그럼 사람들의 삶의 질은 왜 떨어지느냐’는 물음을 제기하게 됐다. 그때부터 경제와 행복의 상관성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해피노믹스를 설명하는데 대표적으로 ‘이스털린의 역설’을 예로 들 수 있다. 미국의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이란 경제학자가 연구를 하다 보니, 미국 국민의 소득이 1만 5천까지 올라가다보면 소득의 증가와 행복의 증가가 별 관계가 없더라는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나와 현대경제연구원이 ‘행복한 경제’에 대해 연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도 이스털린의 역설의 배경이 된 그 단계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소득은 증가하고 경제는 좋아졌다고 하는데, 실제로 보면 자살률은 세계 1등, 노인빈곤율도 OECD 국가 중 최악이다.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소득이 올라도 소득의 불평등, 고용불안, 노후 준비 부족으로 인해 행복과는 비례관계 성립이 잘되지 않는다. 행복한 경제라면 경제가 성장을 하면 일자리도 늘어나고, 국민들의 삶의 질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 세계적으로 행복한 경제에 대한 연구는 어디까지 진행됐나.

“경제와 행복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지표는 더 있다. OECD에서는 ‘Better Life Index(BLI, 더 나은 삶의 지수)’를 해마다 발표하고 있다. UN에서도 'Happiness Index(행복지수)‘를 조사해 발표한다. 대학들에서도 행복경제학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행복이란 것이 주관적인데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이때 설문조사를 이용하면 주관적인 느낌을 아주 행복, 행복, 보통, 보통 등의 표현으로 응답하면서 수치화할 수 있게 된다. 또 행복과 관련된 안정감, 범죄와 관련된 지수들과 소득수준과도 연계시켜 주관적인 느낌을 객관화한 후 조합하여 행복 관련 지표들을 도출해낼 수 있다.”

- 한국은 OECD 34개 회원국 중 행복순위가 꼴찌 수준이다. 경제규모나 1인당 국민소득은 높아졌는데 해마다 국민들의 행복감은 후퇴하고 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고용불안과 노후 준비 부족, 소득불평등의 ‘3불 경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일 년에 두 번씩 약 10년간 경제행복지수를 조사하다보니 일관되게 점수가 나쁘게 나온 항목들이었다. 이 세 가지가 우리나라 국민들의 행복감과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보았다.”

-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고용불안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국 경제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고용안전성’ 강화다. 고용불안을 무조건적으로 기업들 탓을 할 수 없다. 회사가 장사가 안 돼 망하고 있는데 그걸 억지로 회사한테 근로자를 평생 책임지라고 할 순 없지 않나. 그런 민간기업 차원에서의 고용 안정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고용의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고용불안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고용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해선 실업급여, 직업훈련 등 제도를 정비해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할 필요가 있다.

책에서 사회안전망을 서커스 공중곡예의 그물에 비유했다. 그물이 넓고 촘촘하게 잘 쳐져 있어야 떨어졌을 때 받아서 다시 올라가 또 곡예를 할 수 있다. 누구든 서커스 곡예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도 직장을 다니다보면 실업을 할 수 있다. 떨어졌을 때 다시 받쳐줘서 새로운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들에 맞먹는 수준으로 소득이 올랐다고 하나 사회적 안전망은 턱없이 부족하다.

회사가 망하면 누구든 실업자가 될 수 있다. 이때 실업급여,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과 다음 직업을 구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지급 기한이 준비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는 그 수준이 120만원, 8개월이 최대다. 일급을 4만 3000원으로 친 금액이다. 물론 급여가 적어 고용보험료를 적게 낸 사람은 더 적게 받을 것이다. 소득대체율이 아주 적은 수준이다. 선진국의 경우 소득대체율이 70%까지 올라가고, 덴마크는 90%나 된다. 우리나라는 40% 수준이다. 지급기한도 독일은 12개월이고, 덴마크와 스웨덴은 24개월까지 준다. 우리나라는 8개월밖에 주지 않는다. 1년밖에 근무를 안했으면 8개월도 못 받는다. 

금액을 올리고 지급기한을 늘려주면 실직자가 여유 있게 직업훈련을 받고 직업을 습득, 직장을 구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6개월은 공부해야 안심하고 자격증을 딸 수 있고, 구직활동을 몇 달은 해야 할 것이다.”

- 노후불안을 해소시켜 줄 정책적 대책은 무엇인가.

"노후불안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게 연금이다. 국민연금을 어떻게 보완하느냐가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평균 은퇴연령이 53세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을 제대로 받으려면 65세까지 있어야 한다. 53세에 그만둬서 65세 국민연금 나올 때까지 버티려면 10년 정도는 어떻게 할 대책이 없다. 미리 타게 되면 40~50% 확 떨어져 60~70만원밖에 못 받게 된다. 노후준비수단으로서는 미약하다. 이때 ‘브릿지 연금’이란 것을 도입해 실업기간에도, 특히 50대도 국민연금을 연결을 시켜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게 내 제안이다."

-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한 처방은 무엇인가.

"소득불평등을 해결하기위해선 정부가 복지지출을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정부의 복지는 저부담저복지 모델이다. 조세 부담률이 낮고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적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GDP의 19%다. OECD평균은 25%다. 우리나라 복지지출 비중은 GDP대비 한 10%인데 OECD 평균은 22%다. 복지지출도 낮고 세금도 덜 내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은 조세 부담을 조금씩 늘려 복지지출을 늘리는 방향, 중부담중복지 모델로 가야 한다.

그 다음은 북유럽 국가들이 행하고 있는 고부담고복지 모델이다. 북유럽 나라들은 세금으로 소득의 50%정도를 내고 있다. OECD 평균보다도 높다. 복지지출도 30~40% 수준이다. 한편 우리 국민들은 조사 결과 세금을 더 내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를 ‘눔프현상’이라 명했다. 'Not Out of My Pocket' 즉 내 주머니에선 안된다는 뜻이다. Not Out ot my Backyard' 님비현상과 똑같다. 눔프현상이란 일단 남이 먼저 내고, 정부가 어떻게 조치를 해준 다음 내 소득세를 올리라는 것이다. 관련 조사 결과 소득세를 올리자는 비중이 전체의 5%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높은 응답률을 보인 항목은 ‘부자세 증세’, ‘지하경제의 양성화’, ‘정부지출의 구조조정’ 등이었다." <길+>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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