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반이민 강경노선 견지…야당 비판 속 여당도 일부 우려
무슬림국 중심 해외서도 반발…유럽 극우·신나치 세력은 지지 표명

[일요경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反) 이민' 정책을 밀어 붙이면서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반발이 확산되면서 국제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27일 트럼프가 서명한 '반(反) 이민' 행정명령으로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 의원들까지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 전역에서도 반대 집회가 불붙듯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으며, 법조계 인사들은 "헌법 위반"을 지적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취소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부정적 여론의 잘못을 언론에 돌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 만에 이라크, 시리아, 이란, 수단, 소말리아, 리비아, 예멘 등 7개 국가 국민의 미국 비자 발급과 입국을 최소 90일간 금지하고, 난민 입국 프로그램을 120일 동안 중단하도록 한 반이민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수백여명이 미국 공항에 억류되고 외국 공항에서는 비행기 탑승이 취소되는 등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심지어 행정명령 발동 직전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조차도 미국 땅에 내리는 동시에 억류자 신세가 됐다.

정부가 행정명령 적용 대상에 관한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미국 영주권 소지자로, 이미 오랜 시간을 미국에 거주한 이들까지도 미국행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해 오도 가도 못하는 난민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7개 국가 중 한 곳과 다른 국가의 국적을 동시에 가진 이중국적자도 해당된다. 또 이라크 등 위험 국가에서 미국을 위해 기여해 특별 비자를 받고 들어온 이들마저 강제송환 위기에 처해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28일 국토안보부 발표에 따르면 행정명령으로 입국 거절당한 인원 109명을 포함해 총 350명 이상이 행정명령으로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초강력 반이민 행정명령은 곧바로 미국 안팎에서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JFK 국제공항에 억류된 외국인 가운데 이라크에서 미 정부를 위해 일한 이라크인 2명이 포함됐다는 소식에 시민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본국 송환을 금지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뉴욕 브루클린 연방 지방법원은 이들의 송환을 금지하는 긴급 결정을 내렸으며 보스턴과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시애틀 등지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잇따랐다.

그러나 법원의 결정은 행정명령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이런 가운데 주 법무장관과 국회의원들도 반대 목소리를 내며 힘을 보탰다.

15개 주와 워싱턴DC의 법무장관은 29일 성명을 내고 반이민 행정명령이 "헌법 위반이자 불법적"이라고 비난했다.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도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공화당의 중진인 존 매케인(애리조나),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공동성명을 내 반이민 행정명령이 "테러리즘과의 싸움에서 자해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켄터키) 의원도 "미국은 종교 심사를 하지 않는다"며 우려를 표했고, 공화당 상원 랍 포트먼(오하이오) 의원, 오린 해치(유타) 의원, 벤 새스(네브래스카) 의원, 수전 콜린스(메인) 의원도 목소리를 보탰다.

민주당 상원 척 슈머(뉴욕)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뒤집는 입법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노벨상 수상자 12명을 포함한 미국 학자들도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에 서명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억만장자 투자자 워런 버핏 등 유명 인사와 뉴욕 택시노동자연합,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파키스탄 여성 인권 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 등도 비판 의견을 내고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했다.

각계각층에서 강한 반대 여론이 나오는 가운데 시위는 주말을 지나며 전국 규모로 확산됐다.

미국 수도 워싱턴DC는 물론 뉴욕 JFK 국제공항 등 지역별 거점 공항에선 시위대가 "무슬림 환영"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조속한 행정명령 폐기를 촉구했다.

예상치 못한 강력한 반대 여론에 부닥치자 트럼프 행정부는 한 발짝 물러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이것은 종교에 관한 것이 아니라 테러로부터 우리나라를 안전하게 하는 일에 관한 것"이라고 밝히고 "이번 행정명령에 영향을 받지 않은 무슬림이 대다수인 나라가 세계에 40개국도 넘게 있다"고 강조했다.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도 "영주권 소지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범위를 다소 축소했다.

그러면서 지난 28일 미국에 입국한 32만5천명 가운데 행정명령 적용 대상자는 얼마 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추가 심문을 위해 구금한 109명 중 대부분이 이미 풀려났다고 강조했다.

전반적으로 한발 뒤로 물러나면서도 행정명령 강행 의지는 전혀 굽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켈리엔 콘웨이 미국 백악관 선임고문도 행정명령에 따른 비자발급 중단과 난민 억류 등 사태에 대해 "안보를 위해 치러야 할 작은 대가"라고 주장했다.

시위대 규모가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에도 트럼프는 트위터에 "세계가 정말 끔찍하리만치 엉망진창이다. 지금 당장 우리나라는 강력한 국경과 극단적 심사가 필요하다"는 트윗을 남기며 행정명령을 취소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이번 조치가 미국의 대테러 방어전선을 오히려 약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장 이슬람국가(IS)만 놓고봐도 이들의 거점인 이라크 북부 모술을 탈환하려면 이라크의 협력이 절실한데, 이번 조치는 오히려 이라크를 충격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이라크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는 이번 조치를 "오만한 행태"라고 비판하며, 기다렸다는 듯 반미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반난민 기치를 앞세운 유럽의 극우 포퓰리스트들은 환호하고 있다.

네덜란드 자유당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는 트위터에 "나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추켜세웠고, '신나치당'으로 불리는 독일의 국가민주당은 페이스북에 "사상 처음으로 미국에 '잘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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