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호 기자

최순실 게이트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후 삼성은 미래전략실과 사장단회의를 폐지하는 등 빠른 속도로 변화의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한국 내 권력 0순위, 미국 애플에 버금가는 글로벌 기업, 서구인들이 한국은 몰라도 삼성은 안다던, 나는 새도 떨어트릴 듯하던 삼성의 위세 또는 위용이 한 풀 꺾인 느낌이다. 이런 변화가 궁극적으로 삼성과 한국 경제의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지난달 28일 삼성그룹은 삼성 미래전략실을 3월 1일 해체하고, 미래전략실장 최지성 부회장과 차장 장충기 사장, 모든 팀장이 사임한다고 밝혔다.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를 폐지하고, 각 회사들은 대표이사와 이사회를 중심으로 자율경영을 하며 대관업무 조직을 해체한다고 선언했다. 외부 출연금과 기부금은 일정 기준 이상일 경우 이사회나 이사회 산하 위원회 승인 후 집행하며, 박상진 승마협회장은 협회장과 삼성전자 사장직에서 모두 사임하고 파견된 임직원은 소속사로 복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날 삼성 문제를 지적해오며 이재용 부회장의 영장 재청구와 관련해 특검의 참고인 조사를 받아 유명해진 김상조 교수가 소장으로 경제개혁연대는 삼성의 미래전략실 해체 계획을 예측하는 논평을 공개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단순한 미래전략실 해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2008년 삼성그룹이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하고 전략기획실을 설립한 후 2010년 미래전략실로 명칭을 변경했는데, 구조조정본부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이 이름만 다르지 거의 기능이 같은 조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이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해당 기능을 모두 없애는 게 아니라 축소한 후, 그 기능을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주요 계열사로 이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그룹의 결정을 계열사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게 아니라 이를 검토한 후 자율적으로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투명한 경영이 확립돼야 하고, 사외이사를 수용해 경영 합리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산하 기구였던 미래전략실은 사실상 삼성의 모든 계열사 임원 인사와 경영 등을 진두지휘했는데, 법적 근거가 없어서 더 탈법적인 행위들을 해왔다는 것.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삼성생명은 2일 지급을 유예해온 자살보험금 전액을 이자와 원금까지 모두 지급하고, 약속했던 기부액도 수령자에게 지급할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철회했다. 금융감독원의 대표에 대한 문책경고와 일부 영업정지 3개월에 따른 조치로, 소비자 보호와 신뢰 회복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삼성 에버랜드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가 ‘2012 S그룹 노사전략’ 문서에 따라 해고됐던 조장희 부지회장은 5년 8개월 만에 경기 용인의 삼성물산 에버랜드 리조트 사업부로 복귀했다. 작년 12월 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이었다.

삼성그룹 홈페이지도 오는 4월 3일 문을 닫는다. 그룹 차원에서 운영하던 사내방송도 28년 만에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그룹 해체라는 말이 많다. 브랜드 공동체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 주요 기업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직구조에 따른 경영에 들어가는 것으로 재계에서는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아직은 변화에 대한 희망과 우울이 섞여 있는 것 같다. 삼성이 미래전략실과 사장단회의 폐지를 선언한 지난달 28일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특검 수사 결과 발표를 듣고 있다고 말했고, 다른 관계자는 미래전략실은 모두 해체돼 더 이상 자료 발표도 없을 것이라고 침울한 목소리를 전했다. 

현재는 삼성이 해체 수순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이고, 이를 통해 새롭게 태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진심으로 그러길 소망한다. 지주사 체제이든, 핵심 계열사 중심 경영이든 합법적인 방법으로 투명하게 경영하면서 시민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글로벌 기업 삼성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일까. 과욕은 아닐 것 같으며, 그런 모습이 현실화돼야만 최순실 게이트 다음의 출구가 열릴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씁쓸하면서도 희망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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