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건강연대 발간 “인력파견업체, ‘메탄올 중독 실명 노동자’ 회유하거나 덮으려고 했다”
백서 “인력파견업체, 클릭 몇 번으로 불법노동자가 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스마트폰 3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사건을 다룬 백서에서는 신제품이 나오면 주말에도 일하는 등 근로환경이 매우 열악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사진은 실명한 91년생, 82년생 청년 노동자 2명이 작년 10월 국회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일요경제 = 손정호 기자] 삼성전자와 LG전자 스마트폰 3차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메탄올 중독 실명 사건을 다룬 백서에 신제품이 출시되면 주말에도 일하는 등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16일 스마트폰 하청 노동자 메탄올 중독 실명사건을 다뤄온 노동건강연대가 지난달 공개한 ‘스마트폰 제조 하청사업장 메탄올 급성중독 직업병 환자군 추적조사’을 확인한 결과, 피해 노동자 6명을 파견한 인력파견업체는 노동자를 회유하거나 덮으려고 하고 노동자의 일터였던 공장과 하청업체에서는 메탄올 사용을 감췄다.

이 백서는 노동건강연대가 작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진행한 기자회견에 다 담지 못한 6명 피해 노동자 전원과 주변 인물들의 당시 상황에 대한 회고 등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백서는 “원인을 찾기 위해서 의사가 걸어온 전화에 (회사 측에서) ‘그런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며 “인력파견업체는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해 1차 책임을 갖는 당사자이지만 윤리적, 양심적 대응을 보여준 곳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중독사실을 알게 됐을 때 인력파견업체는 그동안 작성하지 않았던 근로계약서를 내밀면서 사인을 받고는 몇 백 만원의 돈을 입금했는데, 하청업체는 노동자가 아프거나 갑자기 나타나지 않아도 찾거나 연락하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받아서 채워 넣는다는 것.

2015년 말에서 작년 초 발생한 스마트폰 3차 하청업체 노동자의 메탄올 중독 실명 피해자는 20대 5명, 30대 초반 1명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신제품 출시 등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했다고 호소했다.

박모씨는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바빠요. 새 제품이 나올 때였어요. 삼성 보급형 모델이 나올 때였어요. 11월 중순부터 1월까지 계속 만들었어요. 그때 바빴으니까 사람이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많이 들락날락 했죠. 나는 야간, 주간 안 바뀌고 계속 그대로 갔어요. 일요일에도 못 쉬죠. 주말도 거의 없어. 일만 했어요. 12월 크리스마스에 좀 쉬고.”라고 말했다.

최모씨는 “처음에 200만원으로 하려고 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거부했어요. 그래서 350만원으로 올려줬어요. ‘치료비 및 미근무로 인해 손실을 본 급여를 현금으로 수령하셨습니다’ 하고 합의서에. 왜 그 금액에 합의를 하게 된 거냐면 어차피 산재보험은 안 된다고. 둘 중에 하나 선택해야 하는데 그냥 이거라도 받으라고.”라고 밝혔다. 

이모씨는 “원래 다른 회사 갈라고 그랬는데 좋은 자리, 주야간 나오면 해주겠다고 해서 바로 들어간 거예요. 가려고 했던 데는 주간만 있었거든요. 야간으로 하면 돈 많이 받으니까. 주간 야간 번갈아 가면서 일했어요. 법적으로 하면 주5일제잖아요. 여기는 말은 그렇게 하죠. 말은 그렇게 하는데 사실상 현장은 거의 매일같이 해요. 막 쉬고 싶어도 못 쉬게 했었는데 메탄올 사건 후 편의를 좀 봐주더라고요. 바쁠 때는 반 강제로 나와 달라 하는 건 있긴 한데.”라고 전했다.

송모씨는 “밤 9시부터 아침 9시까지. 2시간마다 15분 쉬고, 밥 시간은 30분. 12시에 먹었나, 12시 30분에 먹었나.”라고 회상했다.

김모씨는 “아웃소싱에서 근로계약서를 줬습니다. 그거 하나를 작성하고, 일하는 걸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고 바로 일하였습니다. 주의사항 이런 것도. 아웃소싱에서 저한테 계약서를 주고 사인만 하고 끝났어요. 출근 당일 저녁 회사 사무실에서, 어떤 종이를 줘서 거기에 인적사항을 적고, 달라 그래서 다시 주고, 일을 시작했다고 했어요.”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계가 멈추질 않아서요. 저녁 먹을 때만 빼고는. 기계는 그냥 열려있고. 감싸주는, 보호해주는 것은 아예 없고. 먹을 만한 데가 없어요. 제품 올려둔 테이블 위에서 제품 치우고 테이블 붙여서 먹었어요.”라고 근로환경이 열악했다고 비판했다.

◇ 백서 “인력파견업체, 클릭 몇 번으로 불법노동자가 된다”

스마트폰 하청업체 노동자의 메탄올 중독 실명사건을 다룬 이 백서는 인력파견업체에 대해 클릭 몇 번으로 불법노동자가 된다고 주장했다.

노동건강연대에서 발행한 ‘스마트폰 제조 하청사업장 메탄올 급성중독 직업병 환자군 추적조사’ 백서

메탄올 중독 실명 피해 노동자 6명은 모두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3차 하청업체로 취업했는데, 인력파견과 3차 하청 등 지금도 많이 존재하는 근로방식이 과거 70~80년대 흑백영화 등에 등장하는 미싱사들의 근로 수준을 연상시킬 정도로 열악하다는 것.

당시 노동건강연대 관계자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에는 인력파견업체나 3차 하청업체가 많지 않지만 인천이나 수원 등 지방으로 조금만 내려가도 굉장히 많다”며 “박근혜정부에서 노동 유연화를 이유로 과거에 금지됐던 제조업의 파견을 확대해줬는데, 그 이후 인력파견업체나 3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더 열악해져서 우려된다”고 말했다.

제조업 파견 허용이라는 노동 유연화 정책에 따라 인력파견업체와 3차 하청업체 스마트폰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더 악화됐고, 그런 과정 속에서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하는 노동자가 6명이나 발생하는 과거회귀적인 사고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이모씨는 “잡코리아 거기에서 아웃소싱 회사, 품질공정. 전화해서 물어보고 지원서를 써야 된다고 해서 가서 썼어요. 입사지원서 월급 받는 거는 회사에서 바로 받는 게 아니라 아웃소싱 통해서 받았어요. 파견 그게 법에 걸리는지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박모씨는 “인터넷에서 알바천국, 아이디 치고 들어가서 이 동네, 구인구직 들어가서 전화했더니 자리가 없대. 며칠 있다가 전화했더니 회사 앞으로 오라고 해서 회사 앞에서 면접 보고 바로 그날 오후부터 일했어요. 토, 일에는 가끔 쉬는 날이 없고 일해야 한다고, 계약서는 당일 썼어요. 특별 안내 받는 거는 없어요.”라고 지적했다.

김모씨는 “아줌마들이 많았는데, 거의 다 조선족이었어요. 한국인은 별로 없을 건데. 거기서 일하는 남자들도 다 그렇고. 제일 오래 일한 사람이 1년 됐다고 했나. 제가 얼핏 듣기로는. 그렇게 다 오래 일하진 않는데요. 조금하고 다들 힘드신지. 아무튼 오래 일하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도 왔다갔다 많이 하더라고요. 채용하는 사람이 사람을 데리고 와야 되니까. 그게 사람이 많이 달라지긴 해요. 하루하루. 오래 일을 많이 못한다고.”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건강연대 한 활동가는 16일 <일요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파견법은 어려운 내용인데, 인력파견업체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며 “파견법에 허용된 업종에 파견을 하는 것은 괜찮지만 허용되지 않은 업체에 파견을 하거나, 상시직이 할 수 있는 같은 업무를 파견직으로 하는 것은 불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문제에 대해 작년 말 삼성전자와 LG전자 측은 1차 하청업체만 관리 대상으로 3차 하청업체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경영간섭으로 법으로 금지돼 있다고 해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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