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호 기자

[일요경제=손정호 기자] 헌법재판소에 의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종 탄핵된 후 한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부각될 문제는 경영투명화다. SK와 LG그룹은 일찌감치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지만,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 롯데그룹 등은 순환출자 고리가 여전히 존재하며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황제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면서 주식회사의 철학을 무색하게 만드는 모습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4일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상황 속에서, 지주회사 전환은 주주와의 약속으로 그룹 이슈와 관계없이 현재 검토하고 있으며 예정대로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그룹은 15일 지주사 전환을 위한 현대중공업의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현대건설기계, 현대로보틱스 등 분사 기업설명회를 개최했다. 크라운해태제과그룹은 1일 크라운해태홀딩스라는 지주사와 사업사로의 분할을 완료했다.

롯데그룹 역시 지주사 전환 등 경영투명화를 위한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시장에서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으로의 3세 경영권 승계와 경영투명화를 위해서는 현대자동차그룹도 지주사 전환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그룹들이 앞을 다퉈 지주사 전환을 추진 중인 이유 중 하나로는 자사주 경제민주화 법안이 꼽힌다. 회사가 공금으로 매입한 자기회사 주식인 자사주에는 의결권과 배당권이 없는데, 인적 분할을 통해 지주사로 전환하면 지주사가 보유한 자사주에 분할 신설회사의 주식이 배당돼 의결권이 부활한다. 지주사의 최대주주 또는 운영자가 되는 총수일가는 사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경영권을 강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5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공포 1년 후 효력이 발생하는 바른정당 오신환 의원의 상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이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신설회사는 분할 또는 분할 합병할 때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할 수 없게 된다. 

15일 오후 공포 3개월째 효력이 발생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부득이한 선택이라 생각한다면서도, 이대로 확정될 경우 기업들로 하여금 자사주를 이용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소위 ‘자사주의 마법’을 활용하려면 1년 내에 빨리 지주사로 전환하라 팁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혁입법을 가장한 경제민주화 후퇴법안이라는 것이다. 

박용진 의원 측은 3당이 합의한 1년 유예 개정안에 대해 법안의 미비를 장기 방치하고 취지를 영구히 훼손시키는 맹탕허탕 개정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법이 시행되기 전에 사실상 모든 기업들이 법망을 피해 지주사로 전환할 것이며, 사실상 대기업에 면죄부가 되는 지주사 촉진 상법 개정안 통과에 우려를 표명했다. 

창업주의 자식세대로 경영권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양도소득세 등 적법한 세금을 납부하고 진행한다면 이를 탓할 사람들은 없겠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지적으로 읽힌다. 슬프게도 창업주의 경영권이 100% 또는 200% 자식에게 이전돼야 한다는 한국 경제계의 일종의 불문법 같은 인식은 글로벌 시각에서 세련돼 보이지 않는다. 합리적인 제도가 작동한다면 창업주가 누렸던 경영권은 자식세대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축소돼야 하지 않을까. 전문경영인이 나설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법률적 문제들을 깔끔하게 해 투명도를 높이면서 사내외 여론으로부터 호응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모두 건너뛴다면 윤리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조직의 존립 근거는 희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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