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세월호‧옥시 피해자‧쌍용차 해고자‧비정규직들의 끝나지 않은 절규

손정호 기자

[일요경제 = 손정호 기자] 너무 깊고 푸르러서 두꺼운 무게에 짓눌려 그 형체마저 일그러진 세월호는 3년 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유가족들의 농성장에서는 옥시와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문제 등 경제 관련 이슈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인양할 수 없었던 것인가, 인양하지 않았던 것인가라는 논란과 함께 세월호가 멀어버린 눈을 비비는 순간이었다.  

경제는 현대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정치와 때려고 해야 땔 수가 없는데 너무 가까워도 문제고 너무 멀어도 문제가 될 것이다. 결국 정치와 경제가 어떤 각도에서 어떤 형태로 만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정치와 경제가 서로 ‘내 배 불리기’에 집중한 나머지 현재 존재하는 법과 제도, 민심 등을 무시하고 일방주행을 할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을 헌법재판소에 의해 최종 탄핵으로 몰고 간 최순실 게이트 같은 대형 정경유착이라는 커다란 암초를 또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와 경제를 정치와 종교 분리하듯이 물과 기름처럼 나눠놓기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기업이라고 해도 당사 기업의 최대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CSR 등 사회공헌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국가 경제의 바람직한 방향,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그를 통한 기회비용 절감으로 인한 국가의 효율성 및 생산성 증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는 힘들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의 발전 등 신기술의 성장을 위해서는 과감하게 풀 규제를 풀고, 지원할 곳에는 공정한 방식으로 집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이 분배력 한계로 인해 시민들 전체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한계에 도달했고, 너무나 강력해진 대기업 프레임으로 중소기업이나 청년기업이 설자리를 잃고 기술을 빼앗겼다는 울음소리가 들리고, 그래서 전체 사업 기회가 줄어든다는 한탄이 들린다면 적당한 변화 또는 변신은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적당한’이라고 봐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경제민주화나 시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그를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 선진국 상위권 진입 같은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 대기업을 모두 없애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레토릭이자 또 하나의 오해이기 때문이다. 문어발 확장으로 쌍끌이 어선이 어족의 씨를 말리듯이 모든 상권을 장악하는 방식의 대기업집단 확장은 시민경제의 효율성과 행복 차원에서는 의미를 잃은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의 애플이나 구글 같은 대기업이 우리나라에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은 시민 및 국가경제를 위해 미래에도 필요할 텐데, 다만 이런 대기업들이 법치주의 아래에서 중견기업 및 중소기업, 청년기업과 공존하고 소비자인 시민들 위에 군림하기보다는 경제생태계 속에서 적당한 존재 위치를 찾는 게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23일 옥시와 세퓨 등 가습기살균제로 수천 명이 사망한 참사를 알린 환경단체와 피해자가족모임은 세월호 인양에 맞춰 침묵으로 옥시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주인을 잃은 청와대는 푸른 봄 하늘 아래에서 서글퍼 보였다. 큰 칼을 들고 바다에서 조선을 지켰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용맹하게 내려다보는 곳에는 지쳐버린 세월호 유가족들이 헝클어진 머리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쪽에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자신들에 대한 막대한 규모의 손해배상 결정을 철회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는 피켓이 있었고, ‘비정규 노동자의 꿀잠’이라는 글귀가 적힌 허름한 버스 모형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1996년 제20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윤대녕 소설가의 <천지간>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슬픔이 슬픔을 알아보듯이 죽음은 죽음을 알아본다.’ 세월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쌍용자동차 해고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우리 사회 또는 경제 분야의 슬픔과 죽음은 서로를 알아보고 광화문광장에 같이 모여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서글픔이 몰려왔다. 이런 슬픔과 죽음의 모임, 그 분노로 인한 사회 균열 및 기회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들이 만족할 만한 경제 분야의 투명하고 윤리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지면서, 우리 경제의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해야 할 때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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