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경제 = 손정호 기자] 지배구조 투명화 의지를 표명했던 삼성전자와 롯데그룹은 표면적으로는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요구로 지주사 전환 검토를 공식화했던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후에도 지속적 추진을 거론하다가, 지난달 24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권오현 부회장이 부정적인 영향이 존재해 실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이어 27일 공식적으로 포기 선언을 했다. 현재 삼성전자를 사업사와 투자사로 분할해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는 것에는 현행법에 따른 지분 매각 등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고, 이런 리스크를 감안하고 지주사 전환을 추진해서 얻는 경쟁력 강화가 크지 않으며 경영역량 분산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지주사 전환 시 자사주를 소각해야 하는 내용의 일명 ‘이재용법’, 상법 개정안을 입법 발의했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SNS를 통해 “여러 논란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잘했다’고 평가한다”며 “자기 돈도 아닌 회삿돈 40조원으로 확보한 자사주를 지배주주 이 부회장의 경영권 확대를 위해 보쌈해가겠다는 의지를 접고 경영실적과 능력만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롯데그룹은 삼성전자와 반대로 26일 롯데제과와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가 각각 이사회를 통해 지주사 전환을 위한 기업분할과 분할합병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4개 회사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각각 분할하고, 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를 중심으로 각 투자부문을 합병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것.
 
롯데지주 주식회사는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사무실을 마련할 예정인데, 자회사 경영평가 및 업무지원, 브랜드 라이선스 관리 등을 수행한다. 롯데그룹은 2015년 기준 순환출자고리가 416개로 국내 대기업집단 중 가장 많았는데, 이를 순차적으로 해소해 현재 67개까지 줄였으며 4개사의 분할합병이 이뤄지면 18개로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순환출자 고리가 대부분 사라지면 지배구조 단순화로 경영투명성이 제고되고 주주중심 경영문화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유예기간 내에 잔존 순환출자 해소도 검토할 계획이다. 

롯데그룹은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의 난 전에 한국 롯데그룹의 실질적 지주사격인 호텔롯데를 상장해 지배구조를 투명화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로 호텔롯데의 상장을 연기한 후 한국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상 상위에 위치한 롯데제과를 필두로 한 지주사 전환으로 계획을 선회한 것으로 시장에서는 풀이하고 있다. 

정대로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롯데그룹의) 이런 방식은 지주회사 전환과정에서 불필요한 현금 지출 없이 그룹 내 순환출자 해소가 상당 부분 이뤄질 뿐만 아니라 자회사 지분율 요건 충족까지 가능한 장점이 있다”며 “4개사 분할합병을 통해 설립되는 롯데지주사에 대한 그룹 특수관계인의 지분 보유 비중은 약 49.64%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10.56%,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5.73%, 신격호 총괄회장 2.92% 등 총수일가 합산 보유비중은 약 20.93% 수준으로, 롯데지주사가 자회사 지분율 요건 충족을 위해 진행하는 공개매수, 현물출자 및 지주사 신주 교부 과정에 총수일가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주사 전환을 계획했던 삼성전자와 롯데그룹은 표면적으로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지만 내면적으로는 동질의 선택을 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법률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자신이 보유한 지분율 만큼의 경영권을 행사하는 주주 중심주의 강화가 바로 그것이다. SK와 LG그룹은 이미 지주사로 전환해 지배구조를 미리 깔끔하게 정리한 편인데, 삼성전자와 롯데그룹도 이런 노력을 기울이면 촛불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촛불이 원했던 건 재벌도, 평범한 시민도 모두 행복한 사회였을 것이다. 

손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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