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길을 묻다 - 최현용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
“사드 배치 피해 심각, 외교부의 통상업무를 문화부에 설치...해외 진출 적극 지원해야”

 

최현용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은 문화산업 장르마다 유통대기업과 중소제작사의 양극화 심화 현상이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사다리형 산업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손정호 기자)

[일요경제 = 손정호 기자] “영화 등 문화산업에서 CJ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독과점 폐해 이야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문화산업별로 유통대기업과 중소제작사의 양극화 심화가 문제입니다. 게임, 음악, 웹툰 등 다른 장르도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요. 신생 중소제작사가 처음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중소제작사들 사이에서도 재생산이 가능한 선순환형의 사다리 구조가 필요합니다.”

최현용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은 16일 서울시 마포구 성암로 DMC첨단산업센터 B동 사무실에서 <일요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문화산업에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상생형 경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화, 방송, 게임, 음악, 웹툰 등 분야별 유통대기업이 시장에서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대부분을 가져가고 갑의 지위를 활용하기도 하는 현실이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신생 제작사들도 중견 제작사, 고급 제작사로 성장할 수 있는 사다리 구조로 양극화의 간격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사드 배치로 인한 문화산업 피해에 대해서는 대선 전에는 중국 진입 차단의 올 스톱 상태였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유화적인 정책 포지션을 보이면서 심각한 수준은 지나갔다고 전했다. 아울러 현재 문화산업의 통상정책을 외교통상부에서 담당하고 있다며, 문화체육관광부에 통상정책 부서를 만들어서 해외 진출 지원사업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산업의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IT 기술과 문화산업이 각자의 분야에 집중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추구하는 게 좋다며, 4D와 디지털 액터, 스크린X 등 신기술 개발도 필요하지만 현장의 필요성과 연관해 추진하는 게 긍정적이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최현용 소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중소 문화콘텐츠 제작사들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고, 문화산업도 대기업 독점 폐해가 우려된다는 비판도 있다.

▲ 중소 제작사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단언하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지원 예산을 계속 늘리면 된다. 그런데 현실의 시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시장의 구조를 봐야 한다. 모든 장르들이 겪고 있는 현실은 유통 장악 대기업과, 이 유통 플랫폼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수많은 중소 제작사들의 양극화다. 모든 장르들이 다 그렇다. 음악도 그렇다. 멜론은 SKT 소유이고 지니뮤직은 KT 계열사다. 지니뮤직의 주요 주주는 YG, SM, JYP엔터테인먼트다. 영화는 케이블 채널과 CJ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일반인들의 눈에도 잘 보이고 있을 뿐이다. 독과점이라는 비판을 많이 하는데, 음악도 똑같다. 방송국도 같은 구조다. KBS와 SBS, MBC 자체가 대기업이다. 

어느 정도 성숙한 산업 또는 장르는 모두 대기업과 중소 제작사로 양극화되는 게 현실의 시스템이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NC, 넷마블, 넥슨 같은 대기업이 중소 제작사들의 콘텐츠를 구매해서 유통 및 판매하는 역할을 한다. CJ만의 문제가 아니다. CJ만의 문제라는 것은 현실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산업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다. 만화의 경우 중심축이 출판만화에서 웹툰으로 바뀌었다. 웹툰에는 작가와 유통 플랫폼인 네이버, 다음, 중소 웹툰전문기업인 레진코믹스 등이 있다. 유통 플랫폼, 그리고 그 유통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과 중소 창작사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소 제작사들이 어려움을 겪는다기보다는 양극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간이 없다. 중소 제작사는 어려움을 겪는 게 맞다. 어느 중소 제작사가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아남는 경우가 있나. 히트되지 않으면 투입자금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중소 제작사들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회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대기업의 하위에 있는 이 중소 제작사들의 영역에서도 그 자체적으로 피라미드 구조가 형성돼야 한다. 바닥에서 많이 고생하는 신생 중소 제작사, 업계에서 어느 정도 재생산이 가능한 업체, 업계에서 10년 이상 꾸준히 작품을 생산하는 창작집단 등 중소 제작사들 내에서도 피라미드 구조가 구분돼야 한다. 이제 시작하는 업체, 잘 하고 있는 업체, 안정적인 업체로 구분해 양극화의 폭을 줄여야 한다. 

문화산업도 기업화되고 있다. 옛날에는 창작자와 회사 둘뿐이었다. 방송국과 방송작가의 단순한 구조였는데, 지금은 그 중간에 다양한 회사들이 포함돼 있다. 드라마 제작사, 작가 매니지먼트 회사 등 중간회사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는데, 이 관계의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이 관계를 사다리형 구조로 재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세분화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소 제작사를 단순하게 지원한다기보다는, 중소 제작사들도 재생산이 가능한 시스템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통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를 근절하기 위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능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다리형 생태계를 목표로 중소 제작사들을 위한 지원정책이 있어야 하고, 이렇게 가기 위해서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제지하기 위한 바람막이로서의 공정위가 필요한 것이다.  

- 사드 배치로 중국에서 반한 감정이 강해져 우리나라 문화콘텐츠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류 열풍이 한 풀 꺾였다는 지적도 있다.  

▲ 사드 배치로 인한 문화산업의 피해는 대선 전까지는 굉장히 심각했다. 올 스톱이었다. 한류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모든 산업들이 전부 멈췄었다. 중국에 시장을 갖고 있는 오리온, 아모레퍼시픽, 롯데백화점, 현대자동차 등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문화산업은 중국 시장에 접근 장벽이 쳐져서 완전히 중단된 상태였다. 다행히 현재는 대선이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관계를 잘 풀어나가는 정책적 포지션을 취하고 있어서 긍정적인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또 문화상품은 원래 트렌디한 것이다. 자국의 문화상품이 아닌 이상 외국 상품을 소비하는 게 한류다. 이 유행에는 트렌드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팝송이 가요보다 훨씬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라디오에서 한국 가요보다 팝송을 더 많이 방송하기도 했다. 미국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주말에 ‘맥가이버’나 ‘600만 불의 사나이’ 등 미국 드라마를 많이 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국 드라마가 더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가 다시 어느 순간부터인가 ‘CSI’를 비롯해서 미국 드라마가 더 인기를 끌었다. 국가별로 트렌디한 유행을 탄다. 한류가 영원하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문화상품은 트렌디한 흐름을 타면서 지역별 차이도 있다. 한류의 시장 중심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는데, 중국은 드라마보다는 영화와 음악 중심으로 한류가 편성된 상황이다. 이와 별개로 태국은 드라마와 현지 공연 분야에서 한류의 인기가 굉장히 높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이제 한류가 시작되고 있고, 베트남은 이제 어느 정도 규모가 형성됐다. 각 나라별로 트렌디한 특성들이 다르다. 어느 나라는 음악이 먼저 시작하는 등 각 국가별로 진출하는 방식이나 인기 유지 등의 상황이 다 다르다. 일본에서 한류 영화나 드라마의 인기가 조금 줄었다고 하지만 한류 음악의 인기는 여전하다. 국가별로 특정한 한류 장르의 성장주기 차이가 있는 것이지 한류가 한 풀 꺾였다는 건 정확한 인식이 아니라고 본다. 문화상품도 생애주기가 있는데, 전체 시장을 보면 한류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등 시장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산업의 해외 진출 지원 사업을 거의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문화부가 통상정책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상 분야는 외교통상부의 소관이다. 한·미, 한·중 FTA 협상을 할 때 문화 관련 부분 협상을 외교부가 대신한다. 그래서 문화부에는 해외 진출에 대한 정책적 능력, 예산, 힘이 없다. 문화부에 문화산업의 통상정책에 대한 주무부서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산업해외수출진흥공단 같은 형식으로 말이다. 문화부 내에서 통상 관련 전문기관을 만드는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 네이버 라인은 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 진출해 문화콘텐츠로도 영역을 확장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굴뚝 없는 공장’으로 문화콘텐츠 산업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 문화콘텐츠라기보다는 IT 상품이라고 보는 게 더 적합한 분류일 수 있다. 라인 같은 메신저 사업은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시기에 등장한 통신사업이다. 라인의 콘텐츠 사업은 문화콘텐츠라기보다는 통신사업의 일부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ICT는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의 약자다. Contents의 ‘C’가 아니다. ICT 전에는 CPND가 유행했다. CPND는 Contents-Platform-Network-Device의 약자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작은 화면으로 영상이나 음악 콘텐츠를 소비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스마트폰만으로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게 문화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입장에서는 디바이스가 없으면 문화산업은 여전히 오프라인에만 존재할 거라고 본다. 양쪽 모두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옛날에 정보통신부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이 이 업무를 담당하는데, 이 부서의 이데올로기가 CPND와 ICT다. 네트워크와 디바이스가 있어야만 콘텐츠가 시장을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토대에서 CPND와 ICT라는 개념이 학술적으로 제출된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상호가 필요하다. 기술과 문화가 각각 발달하다보니까 둘이 만난 것이다. 기술만 발전하면 뭐하나. 문화콘텐츠, 영화가 1년에 10편도 나오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산업적 측면에서는 문화콘텐츠와 IT, 둘이 분리되는 것도 현실이고 합쳐져서 가는 것도 현실이다. 각자의 산업영역에서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할수록 양자가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된다고 본다. 서로가 각자의 기본이 있어야 한다. 콘텐츠 산업은 콘텐츠 산업의 기본이 있어야 하고, IT 산업은 IT 산업의 기본이 있어야 한다. 이 기본이 서로 돼 있는 상태에서 만나야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양쪽이 기본이 돼 있지 않다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 카이스트 노준용 교수는 ‘스크린X’ 기술을 개발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었다. 

▲ 이런 시도들이 최근에 여러 가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삼성전자에서 LED 패널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화면 자체에서 영사기도 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지금 극장에 가면 화면과 영사기가 분리돼 있는데, 둘을 하나로 합한 것이다. 이 제품은 현재 상용화 준비 중이다. 극장의 앞쪽만 아니라 왼쪽과 오른쪽 벽면에서도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스크린X도 있다. 영화 ‘중천’에는 디지털 액터 기술이 있다. 배우의 움직임을 토대로 매우 정교한 CG를 구현한 것으로, 이 기술도 카이스트에서 개발했다. 그 기술로 별도의 회사를 만들었고, 지금 중요한 CG 업체 중에 한 곳이 됐다. 

이런 기술들을 계속 개발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런 도전들이 어떤 경우에는 성공해서 기존 시스템을 확 바꿀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성공한 경우는 디지털카메라다.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시장이 완전히 바뀌어서 이제는 필름이 사라졌다. 디지털카메라가 시스템 자체를 바꿨다. 극장의 경우 필름을 돌리다가 디지털 영사기로 바꿨다. 새로 나오는 기술들 중 어떤 것은 일반화되기도 하고 사장되기도 한다. 이런 시도들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하면 당연히 좋다고 할 수 있다. 신기술 개발을 열심히 지원하고 업계에서 고민하는 것은 좋지만, 좋다고만 하고 끝나면 안 된다.

카이스트나 국가기술연구원은 콘텐츠 테크놀로지 관련 예산으로 연구를 한다. 그쪽에 지원되는 예산이 연간 3000억 원을 넘는다. 시장이나 현장에서 원하는 기술이 아니라, 이런 것도 한 번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연구되는 경우가 많다. 스크린X는 CJ CGV와의 관계 속에서 만든 것이다. 영화관 의자가 움직이는 4D도 마찬가지다. 현장과 같이 연관돼서 연구를 진행하는 기술은 좋은 상황을 만들 가능성이 높지만, 현장과의 연관성이 없으면 연구를 위한 연구가 되고 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중간에서 조정 역할을 해주는 전문가 단위가 필요하다. 현장도 알고 연구도 하는 전문가 단위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그 산업의 특성을 잘 아는 전문화된 진흥기구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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