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 "트럼프가 러'수사 구름 걷어달라해…수사대상 아니라고 말했다" 논란

서울환경운동연합 회원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방독면을 쓴 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파리 기후변화 협정 탈퇴를 규탄하고 있다.

[일요경제] 지난달 9일(현지 시각)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제임스 코미가 경질되면서 불거진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파문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5개월 만에 최대위기에 봉착했다.

제45대 미국 대통령선거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클린턴 이메일 스캔들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고, 러시아와 당시 트럼프 캠프가 모종의 커넥션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워싱턴 정계를 뒤흔든 사건이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들이 대거 연루된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다가 해임된 코미 전 국장이 상원 정보위 청문회를 하루 앞둔 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중단 압력을 공식으로 폭로하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9일 코미 전 국장을 해임한 것이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온 셈이다.

코미 전 국장은 상원 정보위 청문회를 앞둔 7일 정보위 웹사이트에 공개한 '모두 발언문'을 통해 지난 2월 14일 백악관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고 공식으로 확인했다.

'모두 발언'은 코미 전 국장의 요청에 따라 의회 증언 하루 전날 전격 공개가 됐으며, 그는 여기서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지난달 9일 해임되기 전까지 회동 3차례와 전화통화 6차례 등 총 9차례 접촉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둘이 만난 2월 14일 회동에서 "마이클 플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이 사건을 놔줄 수 있기(let this go)를, 플린을 놔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사건을 놔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수사에서 손을 떼 달라고 요청했다고 코미 전 국장은 공개했다.

지난해 미 대선에서 러시아와 트럼프캠프와의 내통 의혹의 '몸통'으로 간주되는 플린 전 보좌관에 대한 수사를 중단해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압'이 있었다는 미 언론의 보도를 공식으로 확인한 것이다.

미 언론은 그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14일 백악관에서 코미 전 국장과 단둘이 만났을 때 플린에 대한 수사중단을 요구했으나, 코미 전 국장이 이를 거절하고 대화 내용을 메모로 남겼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코미 전 국장은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만 답했다면서 "이 사건을 놔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다"며 수사중단 요구를 거절했음을 강조했다.

코미 전 국장의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대통령 탄핵사유에 해당하는 '사법 방해'라는 게 중론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이 급속히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코미 전 국장은 이날 공개한 '모두 발언'을 통해 1월 첫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나는 충성심이 필요하다. 충성심을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발언 이후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나는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표정을 바꾸지도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하면서 "대통령은 나에게 정직함만을 보게 될 것이라고 답하자 대통령이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다. 정직한 충성심'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특히 코미 전 국장은 지난 4월 11일 전화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내가 당신에게 매우 매우 의리가 있기(loyal) 때문에 우리에게 '그러한 일'(that thing)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코미 전 국장은 "그가 말하는 '그러한 일'에 대답하거나 (무슨 뜻인지) 물어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성명에서 코미 전 국장은 그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개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수사대상이 아니다"라고 확인한 사실도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간의 주장도 사실로 확인된 셈이어서 '수사중단' 외압과는 별도의 논란이 불가피해졌다.

이와 관련, 코미 전 국장은 3월 30일 전화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수사의 구름이 미국을 위해 협상하는 자신의 능력을 방해한다면서 수사를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릴 방법을 찾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코미 전 국장은 "FBI와 법무부가 여러가지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공표하기를 꺼렸다"며 "상황이 바뀌면 그것을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언론 보도를 통해 제기된 '코미 메모'의 핵심 의혹들이 코미 전 국장 본인의 육성으로 직접 확인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코미 전 국장의 발언이 액면 그대로 전부 사실이라면 이는 대통령 탄핵 사유인 '사법 방해'에 해당한다는 게 대부분 헌법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사법 방해는 그동안 미국 대통령들이 직면했던 중대 범죄로,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결국 사임한 리처드 닉슨 및 르윈스키 성추문 스캔들에 휘말렸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여기에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중단 요구가 사법 방해에 따른 정상적인 범죄 기준을 충족시키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물론이고 백악관도 수사중단 요구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코미 전 국장 간의 진실공방과 더불어 여야 정치권의 지루한 갑론을박이 예상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여론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편이라는 게 중론이다.

실제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2∼4일 성인 527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1%가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보호를 위해'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지휘하던 코미 전 국장을 전격으로 해임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또 정치권에선 야당인 민주당 일각에서 이미 트럼프 탄핵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집권 여당인 공화당 내부에서도 탄핵론에 공감하는 의원들이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코미 전 국장의 이번 증언을 고리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세를 한층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회전문지 더 힐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연방의회 흑인 의원 모임인 '블랙 코커스'(CBC) 소속 알 그린(텍사스) 하원의원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 탄핵 소추안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로버트 뮬러 특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와 별개로 미 정치권의 탄핵론이 급물살을 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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