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경제 = 손정호 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특징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으로 요약된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이 가장 많이 진전된 분야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IT 분야인데, 스마트 어드바이스의 발달로 영화와 음악, 게임, 소설 등 문화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이미 CD로 대표되던 음반시장은 MP3 플레이어와 스마트폰에 의해 음원시장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구글의 사내기업이었던 나이언틱랩스(Niantic Labs)의 위치기반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기술과 일본 닌텐도의 캐릭터 포켓몬이 만나 대박을 터트린 신개념 모바일게임 포켓몬고(Pokémon GO)에서도 이런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콘텐츠 제작 방식의 변화로 확산되고 있는 것.

최근 영화계에도 변화의 미풍이 시작됐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천재 감독으로 손꼽히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옥자>는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가 유전자 변이로 탄생한 슈퍼돼지 옥자를 찾으러 미국 뉴욕으로 떠나면서 생기는 모험을 다룬 글로벌 프로젝트다. 봉 감독의 전작인 <설국열차>에 출연했던 틸다 스윈튼, 할리우드 유명배우 제이크 질렌할 등이 우리나라의 변희봉, 윤제문, 안서현 등과 호흡을 맞췄다. 

영화계의 변화는, 글로벌 기업 미란도의 옥자 탈취사건을 다룬 이 영화의 제작사가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라는 점에서부터 시작된다. 1997년 비디오와 DVD 배달 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한 넷플릭스는 미국 최대의 비디오‧DVD 대여 기업 블록버스터를 누르고 시장 1위를 차지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넷플릭스는 사업 초기부터 ‘개별 대여료 및 연체료’ 대신 ‘연체료 없는 월 사용료’ 정책을 채택했다. 현재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등에서 저렴한 월 사용료를 지불하면 영화 등 동영상 서비스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 어드바이스의 발달로 넷플릭스가 콘텐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콘텐츠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직접 드라마와 영화도 제작하며 수익 증대를 도모하고 있는 것. 넷플릭스는 2013년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로 큰 성공을 거뒀고, 10편의 제작비가 1000억 원에 육박하는 <마르코 폴로>로 ‘영화계 투자 거물’ 반열에도 올랐다.

넷플릭스가 제1 투자사인 <옥자>는 오는 29일 온라인인 넷플릭스와 오프라인 극장 상영을 동시에 시작할 계획이다. 그러나 CJ CGV와 메가박스 등 기존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옥자>의 ‘온라인‧오프라인 동시 상영 시작’에 반기를 들면서 상영관을 내주지 않기로 했다. 봉 감독이 <괴물>(1091만 명), <설국열차>(935만 명), <살인의 추억>(525만 명), <마더>(297만 명) 등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작품들로 극장에 큰 수익을 안겨줬던 유명 감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멀티플렉스 극장들의 이번 결정은 눈에 띄면서도 의미심장하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오프라인 극장 상영 종료 후 온라인과 IPTV 등 2차 부가판권 사업을 진행하던 우리나라 영화계의 기존 방식을 벗어난, ‘온라인과 오프라인 동시 상영’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봉 감독의 영화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 

멀티플렉스 극장들의 단호한 입장은 기존 영화시장을 넷플릭스 등 온라인 플랫폼에 뺏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며, 넷플릭스는 자신들의 시장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유명 영화감독의 영화에 투자하고 수익이 조금 적더라도 ‘온라인과 오프라인 동시 상영’ 전략을 채택한 것으로 생각된다.

넷플릭스와 <옥자>로 야기된 영화 시장 변화의 바람은 이제 시작일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바람은 조금씩 커질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상영관을 찾는 매력이 있다. <옥자>의 배급사인 NEW 측도 멀티플렉스 극장들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옥자>는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 대한극장과 서울극장 등 더 고전적인 단일극장에서만 상영하는 독특한 위치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옥자>는 그 스스로 4차 산업혁명, ICT 융합 콘텐츠 시대 이행기의 주인공이 됐다. 

손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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