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길을 묻다 - ‘문재인 정부 재벌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재벌개혁, ‘소유‧지배구조-기업 거버넌스’ 개혁 동시에 종합적으로 적용‧선진화해야”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재벌개혁 법 제도 개선을 새 정부 초기에 하고 집행 이행기를 거쳐 순차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른쪽서 두 번째가 박 교수.

[일요경제 = 손정호 기자] 문재인 대통령 정부의 재벌개혁이 경제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가운데, 새 정부 집권 초기에 상법 등 관련 법제도를 개선하고 이행기를 거쳐 순차적으로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벌개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30일 서울시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 경실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가 공동 주최한 ‘문재인 정부 재벌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왜 지금 재벌개혁인가’ ‘벌거벗은 재벌님’ 등의 책을 출판하기도 한 박상인 교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로, 2013년 이스라엘 방식의 재벌개혁을 롤모델로 해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민간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향상,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며 임금 양극화 해소와 비정규직 문제 등의 해결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박 교수는 우리나라 재벌 문제를 경제력 집중과 세습으로 요약했다. 기업 차원에서 일감몰아주기와 계열사 M&A, 보수 등을 통해 황제경영과 소액주주 이익 침해라는 기업 거버넌스 무력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동시에 시장 차원에서는 재화‧하도급‧노동‧금융시장 등의 진입 및 퇴출 장벽, 사업 기회 박탈, 혁신 및 경쟁력 저하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가 차원에서 산업 위기가 금융 위기로 이어져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시스템 리스크 발생과 정치적 민주주의의 형해화가 도출됐다는 것. 

그에 따르면 미국은 20세기 초 경제력 집중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돼 민주당과 공화당의 개혁 세력 연대로 이를 해소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해소는 좌파나 우파 등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다원주의에 기초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근본을 잡는 문제인데, 재벌의 경제력 집중 해소는 민주주와 시장경제의 문제로 자본주의로부터 자본주의를 지켜내는 길이다.

특히 박 교수는 재벌 중심의 경제성장이 고착‧심화된 우리나라의 2015년 경제성장률 2.6%, 작년 2.7%에 이어 새 정부 잠재성장률 1%대로 예상되는 ‘저성장 고착화의 늪’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이는 경기변동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게 박 교수의 분석으로, 우리나라 경제는 산업 진화의 단절과 혁신의 부재로 위기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의 지나친 재벌 대기업 경제력 집중이 저성장 고착화로 귀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한국 제조업 위기의 본질은 고부가가치화로의 산업 진화가 단절된 것”이라며 “추격해 오는 신흥국이 있다면 범용재의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과거 한국 기업들이 일본과 유럽의 범용재 생산제조업자들을 대체했던 것처럼 중국이나 신흥국이 한국의 범용재 생산자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은 고부가가치 중간재와 특수재 생산으로 산업이 진화해가면서 고부가가치 중간재나 특수재를 국내에서 생산하고 범용재 사업을 축소하거나 국외 이전을 추진했다”며 “우리나라는 현재 재벌 대기업에 의한 중소기업 기술 탈취와 단가 후려치기가 만연해 생산성 향상과 혁신이 발생하지 않아 위기”라고 주장했다.

과거 제조업 강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은 경쟁력을 잃기 시작하면서 고부가가치 중소‧중견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탈바꿈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등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재벌 대기업 중심의 우리나라 발전전략이 한계에 직면했다고 봤는데, 재벌 대기업의 과도한 수직계열화와 내부거래가 혁신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고 경쟁을 제한해 기술 혁신과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1960년대 미국 자동차 산업에서 과도한 수직계열화로 자동차 부품산업의 경쟁력 향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1980년대 통신장비 생산업체 웨스턴 일렉트릭이 AT&A의 분할로 독립회사가 된 이후 정보통신장비 산업에서 발생한 기술 혁신이 좋은 예이다”고 말했다.

과도한 수직계열화 상태에서 발생하는 그룹 내부 계열사들 사이에서의 일감몰아주기는 산업의 기술 혁신을 저해하는 악영향도 끼치고 있는데, 독립적 기업들로 구성된 인터넷 게임 산업과 재벌 계열사들 사이의 일감몰아주기의 대표적 예인 SI(시스템 통합‧system integration) 산업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재벌들의 경영권 세습은 오너 리스크를 강화시키고 새로운 도전기업의 시장 진입과 벤처캐피털의 성장을 더 어렵게 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으며, 재벌 개혁과 약자의 재산권 보호를 통해 재벌 대기업과 물적 자본 중심의 우리나라 산업구조를 기술력이 있는 중소‧중견기업과 인적 자본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통해 제조업 부문에서 양질의 민간 일자리 100만개 이상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이 대기업의 70~80% 수준으로 상승해 임금 격차가 완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강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EU 제1의 경제대국 독일은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하청기업 사이의 임금 격차가 우리나라에 비해 많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교수의 주장은 이제 우리나라도 독일과 일본 방식의 산업구조로 변화해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내수경제 및 중산층 확보, 산업 고도화가 가능하다는 분석으로 풀이된다. 

◇ “재벌개혁, ‘소유‧지배구조-기업 거버넌스’ 개혁 동시에 종합적으로 적용‧선진화해야”

그는 우리나라 재벌 개혁을 위해서는 소유‧지배구조, 기업의 경영을 결정하는 거버넌스 구조를 동시에 종합적으로 선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2013년 이스라엘에서 진행한 재벌개혁 사례를 예시로 들었는데, 이스라엘은 상장회사 2층 구조의 피라미드 기업집단만 허용하며 기존 기업진단에 대해서는 6년 내 충족, 신규 기업진단에 대해서는 즉시 적용을 진행했다. 아울러 금산분리 원칙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계열사 간 출자를 2층 구조로 제한하되 100% 출자에 대해서는 제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주회사 체제를 기업집단 단위로 지정하게 되며 순환출자와 교차출자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데, 지주회사 전환 시 자사주 배정 등 ‘자사주의 마법 효과’와 사업영역 제한 규제 적용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금산분리의 경우 주요 금융회사와 실물회사를 동시에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복합금융그룹에 대해서는 통합 감독체계를 적용해야 하며, 총수일가의 이사와 임원 임명, 이들의 보수, 계열사 간 M&A에 대해서는 MOM(Majority of Minority)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MOM 규칙은 주요 총수일가와 임원에 대한 결정을 다수의 주주들이 함께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자사주를 제외한 내부지분율 33% 미만인 기업의 이사 33%도 MOM 규칙 적용을 추천했으며,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사익 편취를 위한 내부거래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가 예로 든 2013년 이스라엘의 재벌개혁 방향

그는 “가칭 경제구조고도화위원회를 통해 범정부 차원의 경제개혁 방안을 내년 초까지 제시하고 세부적 개혁방안을 내부 토론과 시뮬레이션, 공개청문회를 통해 마련해야 한다”며 “위원회에서 제시한 개혁방안을 내년 지방선거 이후에 입법화하는데, 법제도 개선은 집권 초기에 하지만 법 집행 자체를 이행기를 거치면서 순차적으로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위의 정책 목적이 일자리 창출이 돼서는 안 된다”며 “갑을 문제를 일자리 정책 일환으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근로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문제 해소 수단으로 재벌정책을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제력 집중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단순하고 불가역적인 구조적 개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행위 규제와 행정력 동원에 의존하는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정경유착 가능성만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길+>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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