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길을 묻다 - ‘은행업 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정세균 “시민 금융자산 다루는 은행업, 일정 요건 갖춰야만 인가받을 수 있는 규제산업”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요경제 = 손정호 기자] 한국씨티은행은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하며 전국 영업점 126개 중 101개를 폐쇄할 예정이라, 대규모 구조조정이 동반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1~3차 산업혁명과 달리 블루칼라에 이어 화이트칼라의 일자리까지 위협한다는 점에서 기존 산업혁명과 차별화되는데, 이런 부작용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국내에서 처음 제기된 것이라 향후 진행 및 대응을 주목하고 있는 것.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등이 각광을 받을 전망인데, 일자리 총수의 변동 차이가 클 것이라는 우려와 직업군 변동 등 조정이 따르지만 일자리 총수는 변하지 않거나 늘 것이라는 전망이 상반되고 있는 상황이다. 

4차 산업혁명은 금융 외의 다른 산업군에서도 모두 심화단계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에 일자리 축소 등 일시적 구조조정, 직업군 변동 등 장기적 산업 변화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일 서울시 여의도 국회도서관 4층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과 함께 ‘은행업 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 은행업 인가요건 구체화를 위한 은행법 개정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박 의원은 “최근 한국씨티은행이 전국 100여 개 점포를 폐점하는 대규모 점포폐점 전략을 발표해 논란을 낳았다”며 “씨티은행의 이번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면 전국 영업점의 80%가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개별 은행의 이런 발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국내 금융 소비자들에게 상당한 불편과 혼란이 예상되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동반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기 때문”이라며 “씨티은행이 대규모 점포 폐점을 통해 특정계층만을 대상으로 영업하려는 게 아닌지 강한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업점포 수를 줄이는 것은 비대면 거래가 익숙지 않은 금융 취약계층인 지역민과 노년층이 겪을 피해를 외면한 처사”라며 “지역 근무 직원들은 장시간 원거리 출퇴근을 하거나 합숙소에서 머물러야 하며, 자녀를 둔 여성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 불가능해 사실상 정리해고 통보와 다름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1998년 은행법 개정 후 은행의 경영성 자율화를 확보해주면서 금융당국의 허가 없이도 은행들은 제한 없는 점포와 인력 조절이 가능하게 됐다”며 “그동안 한 번도 대규모 점포정리가 계획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 부정적 효과에 대한 우려가 논의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씨티은행의 대규모 점포 폐쇄 계획을 계기로 현행 은행법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씨티은행은 사상 초유의 점포 폐쇄 전략을 내놓고 고객과 노동자 등 이해당사자와 어떤 논의도 없이 강제로 밀어붙이고 있다”며 “제주도 고객은 은행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육지에 나올 수밖에 없는 최악의 사태를 밀어붙이면서도 경영진은 오히려 당당하게 은행 선진화 전략이라고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 위원장은 “은행법은 은행 인가에 필요한 요건을 세세히 열거하고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며 “은행이 아무리 민간회사더라도 금융산업의 특성상 최소한의 공공성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데, 고객이 차별 없이 은행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금융 접근권도 포함된다”고 전했다. 

씨티은행이 추진 중인 대규모 점포 폐쇄는 차별 없는 금융 접근권을 정면 부정하는 행위라 철회해야 하며, 씨티은행 노동자들과 시민들, 금융당국 등 정부가 함께 나설 것을 촉구했다. 국회와 금융당국 등 정부 관련기관들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달라는 요구다. 

◇ “시민 금융자산 다루는 은행업, 일정 요건 갖춰야만 인가받을 수 있는 규제산업”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가운데)이 3일 자산관리서비스 영업점 서울센터 개점 후 참석자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씨티은행은 기존 영업점 80%를 폐쇄하고, 서울센터 등 지역 거점별 대규모 오프라인 점포와 디지털 금융으로 개편할 계획이다.

씨티은행의 대규모 점포 폐쇄 계획이 은행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가운데, 시민들의 금융자산을 다루는 은행업은 일정한 요건을 갖춰야만 인가를 받을 수 있는 규제산업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은행이 시민들의 삶의 근간인 금융을 다루는 공공재적 성격이 공산품에 비해 강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은행의 영업 기준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 문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씨티은행은 1967년부터 한국에서 영업을 시작했는데, 2004년 한미은행을 인수하며 씨티은행의 한국 지사에서 한국씨티은행으로 변모했다. 전국은행연합회에 소속된 민간 시중은행 중 한 곳으로, 씨티은행이 한국씨티은행의 지분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씨티은행의 경우 대주주 등이 있지만 특정가문이 소유하거나 연방정부 등이 지분을 보유해 공공을 갖는 형태는 아니다. 주주들이 소유해 경영하는 민간은행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은 축사를 통해 “시민의 금융자산을 다루는 은행업은 다른 업종과 달리 일정 요건을 갖춰야만 인가받을 수 있는 일종의 규제산업”이라며 “은행법 제8조에 따르면 은행업을 경영하려는 자는 금융위원회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하며 사업계획 타당성, 건전성은 물론이고 은행업을 경영하기에 충분한 인력, 영업시설, 전산체계, 물적 설비 등을 갖춰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타당성과 충분성에 대한 제대로 된 법적 정의가 없어 점포의 신설 및 폐쇄, 인력 구조조정에 대해 금융당국조차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며 “지난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인 1998년 금융의 국제화, 개방화, 자율화 추세에 맞춰 지점 신설, 폐쇄 등과 관련한 사안들을 전면 자유화하는 은행법 개정이 이뤄진 바 있다”고 전했다.

씨티은행의 대규모 점포 폐쇄 계획에 대해서는 점포수가 대폭 줄어들게 되면 소비자 불편은 물론이고 대규모 해고 사태 발생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씨티은행의 이런 조치는 현행법을 위배하는 것이므로 금융당국의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는 것.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인터넷 뱅킹 같은 핀테크 산업에 밀린 은행 영업점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며 “씨티은행은 경영건전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금융의 디지털화 시대에 따른 생존전략상 110여개 영업점을 통폐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추 대표는 “은행 영업지점들이 통폐합하게 되면 은행들은 앞으로 일부 VIP와 기업 고객 위주로만 상대하게 돼 정말 금융의 손길이 필요한 소매금융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며 “영업지점의 통폐합으로 직원 대량해고 사태도 불 보듯 뻔해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씨티은행처럼 국민들의 일자리와 직접 연관이 있는 은행 영업지점의 신설 및 폐쇄, 인력 구조조정 등에 대해 금융당국조차 직접적인 감독‧행정 조치 권한이 없다고 답변하고 있어서 은행법 개정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며 “1998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은행법이 개정되면서 금융의 국제화, 개방화, 자율화 명목으로 영업지점 신설과 폐쇄 등 관련 사안들이 전면 자유화돼 외국계 은행 먹튀 논란과 함께 자주 언급된 사안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외국 금융자본이 국내에 많이 들어와 금융시장이 활기를 띄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금융당국이 지나치게 외국 금융자본을 의식해 간섭과 자율성 훼손으로 외국금융이 떠날 것을 우려해 국내 금융시장을 교란하는 것을 두고 봐서는 안 되며, 민생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더불어민주당 기조와도 맞지 않다”고 역설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경우 “씨티은행은 대규모 점포 폐쇄에 따라 임직원 3544명 중 80%인 약 2900명 직원들의 일자리가 갑자기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며 “이런 조치가 현행 은행법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지 논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 원내대표는 “은행법 8조에 따르면 은행업은 금융위원회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하며 사업계획서 타당성과 건전성은 물론이고 은행업 경영에 충분한 인력, 영업시설, 전산체계 및 물적 설비 등을 갖춰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사실상 사문화됐다”며 “타당성과 충분요건에 대한 제대로 된 법적 정의가 없어 점포 신설 및 폐쇄, 인력 구조조정에 대해 금융당국조차 직접적인 감독‧행정 조치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길+>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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