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호 기자

[일요경제 = 손정호 기자] 한국 경제는 규모와 질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면서 재벌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경제 정치적 입장이라기보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낳은 대규모 정경유착의 폐해를 시민들이 알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는 시민들의 선택이니까. 

재벌 대기업과 기업이 나쁜 것은 아니다. 재벌 대기업과 기업이 나쁘다는 인식은 슬픈 일이며, 기업은 시민들에게 호감을 받는 존재여야 한다. 경제 생태계에는 대기업도 있고 중견기업도 있고 중소기업도 있어야 하며, 성공이 있으면 실패도 있을 수밖에 없다. 소비자 정책 등이 잘못되거나 시장의 흐름에 따라 혁신하지 못해 도태하는 경우 소멸될 수도 있고 새로운 창조적 기업이 성장할 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 경제는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정책으로 ‘한강의 기적’ 성공을 거뒀지만, 재벌 총수일가가 있는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 현상이 너무 크고 강해서 다음 단계로 도약하지 못하는 게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GDP는 작년 IMF 기준 세계 12위이지만, 재벌 대기업의 파워에 의해 왜곡된 상속과 황제적 경영, 경영권 세습의 일반화 등 전근대적 관행이 계속 이어지면서 경제의 질은 100위권이라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업 이사회의 유효성은 작년 말 138개국 중 109위, 기업경영윤리 98위, 주주 보호 97위, 감사 공시 62위로 하위권으로 조사됐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최근 저서 ‘왜 지금 재벌 개혁인가 : 박정희 개발체제에서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로’에서 한국 경제에 일침을 가했다. 재벌 대기업들은 중견‧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는 경우가 많고 단가 후려치기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지만, 이후 중견‧중소기업의 도산이나 기술 혁신 좌절로 인해 해당 산업 생태계 자체가 일그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중견‧중소기업의 기술 혁신이 사라지면 대기업은 해외 중견‧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리고, 국내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 양극화 심화로 불만과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것.

우리는 소유와 지배가 분리되지 않고 있으며,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창업주의 아들과 딸, 손주나 손녀에게만 세습하는 관행이 거의 100%에 가까운 경제의 ‘새로운 혁신’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GDP 세계 12위, 1인당 GDP 세계 30위로 아직 위로 올라갈 길이 많다. 하지만 중국 등 개발도상국들의 추격은 시작됐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과 독일 기업들을 제치고 성장했다면, 이제 중국 등의 기업들이 우리나라 기업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일본과 독일 기업들처럼 강소기업 중심의 혁신형 경제로 나아가면서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순환출자와 교차출자,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한 총수일가의 경영권 세습 지원, 일부 지분으로 100% 지배라는 주주 자본주의에의 비논리성, 이사회의 비민주성과 폐쇄성 등을 극복해야 하는데, 박 교수는 재벌개혁을 통해 이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경제민주화 입법을 통한 재벌 개혁, 재벌 대기업의 지나친 경제력 집중현상을 완화시킨다고 해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지주회사 체제의 구조를 단순화하면 일부 기업을 매각해야 하며, 이사회의 민주적 통제 장치와 경제적 약자의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불공정 거래 근절을 통해 소수 재벌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현상을 완화하고 중소‧중견기업의 사업 기회 및 매출 증대를 통해 새로운 혁신 가능성을 열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면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사이의 임금 격차가 줄어들어 청년들도 중소‧중견기업 취업을 생각하면서 벤처 창업과 벤처 캐피탈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모두가 같이 잘 사는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것은 불온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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