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 더램프의 박은경 대표 "김사복씨 아들 주장, 진위 확인 중"

영화 '택시운전사' 제작사 박은경 대표.

[일요경제] "사실 천만 관객은 예상하기 쉬운 스코어는 아니잖아요. 다만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죠."

24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쇼박스 사무실에서 만난 '택시운전사'의 제작사 더 램프의 박은경(45) 대표는 '천만영화'를 배출한 소감을 묻자 담담하게 말했다.

'택시운전사'의 모티브는 이미 알려진 대로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수상 소감이 담긴 신문 기사였다.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세계에 알려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은 힌츠페터는 당시 자신을 광주까지 태우고 간 택시기사 김사복과 광주시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박 대표는 2014년 함께 일하던 PD를 통해 이 기사를 접한 뒤 개인적인 기억이 떠올랐다고 했다.

"2009년 쇼박스에서 일할 때 동티모르에서 찍고 있던 영화 '맨발의 꿈' 촬영장을 찾았어요. 당시 현장에 괴한이 침입해 모두 미친 듯이 도망쳤죠. 저 역시 무작정 도망가 민가로 숨었는데, 그곳에 먼저 도망와 있던 분과 눈이 딱 마주쳤지 뭡니까. 그때 얼마나 민망하든지…저 자신이 나름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창피했습니다. 그 일을 겪고 나니 위험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구하는 일은 정말 큰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기사를 보면서 그 당시 기억이 떠올랐어요. 김사복, 힌츠페터가 그런 상황에서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은 작지만, 큰 주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택시운전사'는 그렇게 신문기사와 박 대표의 기억이 합쳐져 시동이 걸렸다. 관련 자료를 모으고 택시조합 등을 통해 김사복이라는 인물도 백방으로 찾았다. 그러나 끝내 김사복은 찾을 수 없어 힌츠페터의 인터뷰와 영화적 상상을 바탕으로 '만섭'(송강호 분)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박 대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조금은 다른 시선에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광주를 정면으로 다루되, 그때 사람들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면 어떨까 생각했죠. 그 당시 광주 사람들, 서울 사람들, 그리고 외신 기자 등 각자 다른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무거운 소재임에도 1천만 명에게 울림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배우 송강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 대표는 송강호와 함께 작업한 것은 "호사였다"고 표현했다.

"원래 시나리오 속 만섭은 조금 더 보수적인 아저씨의 느낌이었는데, 송강호 씨가 사랑스러운 인물로 만들어줬죠. 그래서 관객들이 마음을 열고 만섭과 함께 광주에 마음 편히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강대 국문과 출신인 박 대표는 제일기획, IBM을 거쳐 2003년부터 쇼박스 마케팅팀장과 투자팀장을 지냈다. 이후 2012년 제작사를 세운 뒤 '동창생'(2013), '쓰리 썸머 나잇'(2014), '해어화'(2015)를 제작했다. 네 번째로 제작한 한국영화 '택시운전사'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박 대표는 '도둑들' '암살'의 안수현 케이퍼필름 대표, '베테랑'의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와 함께 천만영화를 배출한 여성 제작자 대열에 올랐다.

박 대표는 그러나 "한 번도 여성임을 인식하고 일을 한 적이 없다"면서 "여성 제작자라는 수식어가 오히려 불편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고등학교 2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워킹맘이다.

"좋은 엄마가 되기는 힘들 것 같고,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괜찮은 어른이 되려면 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잘 챙기는 엄마는 아니지만, 직업인으로서 엄마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고등학생인 아들이 친구들에게 '택시운전사'를 한 번 더 보여주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는 제가 해줄 수 있죠. 하하"
    박 대표는 차기작으로 '조선어학회'를 준비 중이다.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작전인 '말모이 작전'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택시운전사'의 시나리오를 쓴 엄유나 작가의 감독 데뷔작이다.

"그동안 여러 작품을 만들면서 제가 잘할 수 있는 영화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또 제작사 이름(더 램프)처럼 세상을 조금이라도 비출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너무 큰 불빛은 부담스럽고요."

박 대표에게는 최근 또 하나의 숙제가 생겼다. '택시운전사' 속 김사복의 실제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김승필(58) 씨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호텔 택시 기사였고, 아버지가 당시 독일 기자분과 광주를 다녀오셔서 들려주신 이야기와 영화 내용이 일치한다"면서 "아버지는 1984년에 6개월의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사복이라는 이름이 적힌 가족관계 증명서도 공개했다.

박 대표는 "김 씨에게 아버지의 사진을 건네받아 힌츠페터의 아내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 여사에게 진위를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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