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에 접수된 직업병 피해자의 80번째 죽음

[일요경제=김민선 기자]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전신성 경화증이란 직업병을 얻은 노동자가 10년 간 투병 끝에 추석 당일 사망했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 및 유가족 시민단체에 접수된 피해노동자 중 80번째 사망자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에 따르면 고 이혜정 씨는 4일 추석 당일 만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삼성그룹 전자계열사 중에서는 118째 죽음이다.

이 씨는 1995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한 후 만 3년을 채우고 퇴사했으나 결혼 후 가정을 이뤄 생활하던 중 2008~2009년 경 희귀질환 이름도 모른 채 이상 증상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3년 이 씨는 자가면역계 희귀질환 중 하나인 전신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서히 장기가 굳고, 손끝에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괴사되는 질환이다.

이 씨는 이듬해 10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제기했으나 2016년 7월 근로복지공단의 “화학물질 노출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산재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이 씨가 3년간 기흥공장에서 일하며 참여한 공정은 1라인(가장 오래된 라인)의 확산공정으로, 6~7가지 화학물질이 담긴 수조에 웨이퍼(반도체 원판)을 담갔다 뺐다 하는 세척 업무다. 이후 8라인에서도 같은 공정 업무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확산공정은 800~1200℃의 초고온 작업으로 세척 과정에서 결정형 실리카 분진, TCE, 톨루엔, 크실렌, 노말헥산 등 복합 유기용제와 수십가지 물질명이 공개되지 않은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이 씨는 반올림 ‘피해자 이어말하기’ 인터뷰에 참여하는 등 삼성 직업병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피해자 중 한 명이다.

이 씨는 2015년 10월 인터뷰에서 “저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 가족이 아파도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 미안하다고 사과는 안 해도 돼요. 앞으로는 이런 똑같은 병이 없기를 바랄 뿐이니까”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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