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준정규직 87.6%가 여성…신한은행은 99%가 여성

<사진제공-심상정 의원실>

[일요경제=심아란 기자]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단순히 고용형태만 바꾸는 게 아니다. 노동자에게 정규직에 합당한 보상과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시중 5대 은행에서는 무늬만 정규직인 ‘2등 정규직’을 만들어 노동자를 차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이 ‘2등 정규직’은 90% 이상이 여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시중 5대 주요 은행(신한·우리·KEB하나·KB국민·기업은행)에 존재하는 ‘2등 정규직’이 정규직과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지만 근로조건에서 정규직과 차별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중 은행권은 2007년경부터 선도적으로 정규직화를 시행했다. 다만 대면업무를 맡던 비정규직을 기존 정규직과 합치지 않고 별도의 직급을 만들었다. 이러한 방법은 우리은행이 고안한 것으로 ‘우리은행식 정규직화’라고 한다.

시중 은행들은 '우리은행식 정규직화'를 추진했고 이에 따라 신한은행에서는 ‘RS직군’, 우리은행 ‘개인금융서비스직군’, KEB하나은행 ‘행원B/6급’, KB국민은행 ‘L0(엘제로)’, 기업은행 ‘준정규직’ 직급이 생겨났다.

특히 해당 직급의 노동자는 여성이 90% 이상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심 의원은 “주로 여성이었던 비정규직 직원들이 고용안정은 확보했지만 1990년대 초 남녀 차별이라는 이유로 사라진 ‘여행원 제도’가 사실상 부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 의원에 따르면 신한은행의 부행장급(전무) 직원 15명 중 여성은 없다. 이에 반해 RS(Retail Service) 직군에서는 여성비율이 99.3%(2398명 중 2382명)에 달한다.

특히 RS직급은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하지만 평균연봉이 정규직 행원의 절반에 불과했다. 또한 책임자급 직원이 되기 위한 근속연수는 기존 정규직보다 최장 6년 길고, 승진 경로 또한 복잡하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신한은행은 정규직과 RS직군 사이에 지엽적 업무 범위 차이를 꼭 규정해 차별의 근거를 존속시키고 있다고 심 의원은 비판했다.

심 의원은 앞서 지난 7월 금융위원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정부 지침에 따른 선도적인 정규직 전환을 촉구했고,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도 시중은행까지 비정규직 정규직화 방침을 확대할 것을 금융위원장에게 주문한 바 있다.

특히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은 임기(2019년) 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완수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자제적으로 TF를 구성해 노사 간 협의를 진행 중에 있다.

<사진제공-심상정 의원실>

기업은행의 경우 현재 무기계약직(준정규직)이 3706명으로, 정규직 전환 대상자가 시중 5대 은행 중 가장 많다.

이에 심 의원은 23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도진 행장에게 TF 구성에서 전환하려는 내용 중에 ‘2등 정규직’ 관련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지 질의했다.

김 행장은 “그렇다”고 하면서도 “정원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긴밀하게 협의는 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심 의원은 “흘리는 땀만큼 동등하게 보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공기업에서 앞장서서 이번에 반드시 해결해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 <사진제공-심상정 의원실>

아울러 심 의원은 “2등 정규직의 여성화, 임금 격차, 단절된 승진 사다리, 줄어드는 업무범위 차이를 종합해보면, 민간은행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명분으로 ‘여성차별을 제도화’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은행권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명분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계급을 만들었는데, 이런 기형적인 정규직화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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