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연체채무원금 평균 450만원…상환능력심사 거쳐야
금융위, “신청자 중 상당수는 재산 없고 중위소득 60% 이하인 저소득층 예상"
‘빚은 버티면 된다’…도덕적 해이 우려도

[일요경제=심아란 기자] 정부가 원금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인 장기소액연체자 159만명의 채무를 탕감해준다. 채무원금의 규모는 최대 6조2000억원으로, 채무탕감에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금융권 출연금 및 시민·사회단체의 자발적 기부금을 활용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취약계층 상당수가 장기간 추심에서 벗어나 재기의 기회를 얻게 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 등 관계기관은 29일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내년 2월부터 장기 소액 연체자들에게 신청을 받아 상환능력심사를 거쳐 채무를 없애주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자료제공-금융위원회
자료제공-금융위원회

지난해 말 기준 원금 1000만원 이하 생계형 소액채무를 10년 이상 상환하지 못한 장기소액연체자는 모두 159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국민행복기금이 민간금융회사에서 사들인 채권 3조6000억원을 갚지 못한 83만명과 민간금융회사나 대부업체, 금융 공공기관에 2조6000억원을 갚지 못한 76만명을 더한 규모다.

이들이 갚지 못한 빚의 원금은 6조2000억원이다. 이들이 1인당 평균 연체한 원금은 국민행복기금 연체자 기준 약 450만원으로 기초생활수급자나 60세 이상 고령자 등 사회 취약계층이 대부분이라고 금융당국은 설명했다.

이들은 금융회사가 대부업체 등에 부실채권 재매각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끝없는 추심에 시달려왔다. 63.5%가 1차례 이상 시효가 연장된 채무로 평균 연체 기간은 약 14.7년에 달했다.

이에 정부는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내년 2월부터 재산·소득·금융·과세 등 증빙자료를 제출받는 형태로 신청 접수를 개시한 뒤 상환능력 심사를 거쳐 채무탕감 대상을 선정할 예정이다.

'1000만원 이하·10년 이상'이란 조건은 10월 31일을 기준으로, ▲연체 발생 시점이 2007년 10월 31일 이전 ▲연체 기간이 10년 이상 ▲이자·연체이자·가지급금을 제외한 채무원금의 잔액이 1000만원 이하를 말한다.

다만 정부가 모든 빚을 탕감해주는 건 아니다. 재산이 없고, 월 소득이 99만원 이하인 이들은 상환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고 추심을 중단하면서 빚을 없애준다.

10년 이상 된 장애인 자동차나 1t 미만의 영업용 차량 등 생계형 자산을 제외하고 회수 가능한 재산이 없고, 1인 가구 기준 월 소득이 99만원으로 중위소득의 60% 이하면, 상환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또한 채무조정을 받지 않고 채무를 연체하고 있는 이들이 상환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 추심은 즉시 중단하지만, 채무탕감은 최대 3년 이내에 해준다.

채무조정을 받고 상환 중인 이들이 상환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즉시 채무를 면제한다.

정부는 민간금융회사 등이 보유한 2조6000억원의 채무원금을 탕감할 재원마련을 위해 비영리재단법인 형태로 별도의 한시 기구를 설립해 관련 시민·사회단체 기부금이나 금융권 출연금을 모을 계획이다.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3조6000억원의 채무원금은 정리하더라도 별도의 예산이 들지 않는다.

정부는 ‘빚은 버티면 된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확산될 우려에 대해 “연체자 신용회복 지원의 기본 원칙은 ‘빚은 상환능력에 따라 갚아나간다’이며, 이번 대책도 이러한 원칙을 따르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지원 대상자를 생계형 ‘소액’, ‘장기’ 연체자로 제한해 도덕적 해이 논란을 사전적으로 최소화했다"면서 "공신력 있는 자료를 통한 면밀한 상환능력 심사를 전제로 ‘상환능력이 없는’ 채무자에 대해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상환능력이 없는 채무자 간 비교 시 성실상환자가 보다 더 큰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했다”라고 덧붙였다.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최성일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김윤영 서민금융진흥원 원장, 최 위원장, 문창용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사진제공-연합뉴스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최성일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김윤영 서민금융진흥원 원장, 최 위원장, 문창용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사진제공-연합뉴스

이명순 금융위 중소서민금융정책관은 "채무탕감에 정부 재정 투입은 없으며, 금융회사 등의 자발적 기부금을 활용할 계획"이라며 "납세자보다는 채무상환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금융회사가 일정한 책임을 진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또한 "실제 추심중단과 채권소각 대상이 되는 채무자 규모는 본인 신청여부, 상환능력 심사결과 등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신청자 중 상당수는 재산이 없고 중위소득의 60% 이하인 저소득층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부정감면자 신고센터를 운영해 재산·소득을 은닉하고 채무탕감을 받은 부정감면자가 발견되면 감면조치를 무효로 하고 신고자를 포상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부정감면자는 신용정보법상 '금융질서문란자'로 등록해 최장 12년간 금융거래상 불이익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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