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접촉‧성희롱 발언 등 괴롭힘
하청업체 노동자의 인사‧운영도 관여 도급 위반

사이언스홀 전경
LG사이언스홀 전경

대기업들의 ‘갑질’ 횡포가 순수 사회공헌 목적으로 운영 중인 대기업 사업현장에까지 벌어져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지난 21일 LG그룹이 운영하는 ‘어린이 과학관’ 사이언스홀의 사내하청 협력업체 노동자로 일하던 김 씨‧박 씨가 회사 측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괴롬힘을 당해 퇴사해야만 했던 사실을 한겨레가 단독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 사직서를 쓴 김 씨는 친척 장례식을 다녀온 다음날 출근하자 “얼굴 꼴이 그게 뭐냐”는 말을 들었고, 동시에 거울을 내밀며 화장하기를 강요받았다. 또 “다리가 튼실해 운동화‧레깅스가 잘 어울린다”는 등의 성희롱 발언까지 들어야 했다.

김 씨는 사직서를 쓰기 전에 정신과 병원에 다니며 약물치료까지 받았지만 거듭된 갑질 스트레스를 극복할 순 없었다. 진단서엔 “본원에서 정신치료 및 약물치료 시행 중인 분으로 환자는 성추행 사건으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며 향후 지속적인 정신과적 치료를 요함”이라고 돼 있다.

본지 취재 결과 박 씨의 경우 관리자로부터 신체 접촉‧성희롱 발언 등 괴롭힘을 당해 이를 회사에 알렸으나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노동청‧경찰서에도 찾아가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고소·고발을 위해 찾아간 노동청에선 “우리는 임금체불 사건만 처리한다”는 소리만 들었고, 경찰서에선 “갑질에 해당하더라도 해결은 어렵다”는 말이나 들어야 했다. 결국 박 씨는 지난해 2월 퇴사를 결정했다.

이는 김 씨‧박 씨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김 씨가 근무하는 동안, 사이언스홀 운영을 맡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퇴사는 아주 많았다. 10여명이 근무하는 곳에서 1년에 6~7명이 일을 관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내가 4년 차가 되자 가장 선임이 됐다”며 “대부분 원청업체 관리자들 때문에 회사를 나가는 경우였다”고 말했다.

사회공헌 목적으로 세워진 사이언스홀은 LG그룹의 계열사인 HS애드가 운영하고 있다. 사이언스홀은 500여명의 HS애드 직원 이외에 회사 관계자가 차린 하청업체 ‘사이엑스’에서 관리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의 갑질은 하청 직원들의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으로도 이뤄졌다.

관리자가 A직원을 다그칠 때 B직원에게 A직원의 이력서를 들이밀며 “이력서에 다 나와 있다”며 “쟤는 이래서 문제야”라고 소리를 지르는 등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 들여다보고, 다른 이에게 공개돼선 안 될 개인정보를 ‘무기’로 삼았다.

심지어 사이엑스 노동자들은 하청업체 노동자의 인사‧운영에도 원청이 관여했다고 말했다. 입사 면접을 볼 때 과학관의 관장과 사이엑스 전무가 함께 들어왔다는 것이다.

사이언스홀에서 근무하다 그만둔 박 씨는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관장에게 불려가 혼이 났다”고 증언했다. 

원청 관리자가 하청업체 노동자의 인사에 개입하고 일상적인 업무 지휘·감독을 하는 것은 도급계약 위반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직장갑질 119’ 조혜진 변호사는 “관장이 면접 자리에 나가 채용에 관여하고, 프로그램 기획에 지시도 하는 등 업무감독권과 인사권을 행사해 ‘불법파견’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원청인 HS애드 관계자는  “사이언스홀 운영은 100% 사이엑스가 하고 있어 불법파견은 아니다”라며 “회사가 사실관계를 철저히 확인해서 엄벌하겠다”며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현직에 있는 관장이나 근무하는 관리자가 '사실과 다르다'거나 '그런적 없다'고 발뺌하면 그만인데 어떻게 철저히 조사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만둔 사람들 얘기도 들어보고..."라며 말꼬리 흐린 답변을 했다.

한편 이에 대해 LG그룹 관계자는 “LG에서는 갑질이 있는 편도 아니다”라는 입장만 고수하며, 자세한 내용 취재에는 응답하지 않으며 연락을 회피하고 있다.

지난 20일 직장정보 사이트 ‘잡플래닛’의 리뷰에 직장인들이 남긴 글에서 '갑질'이란 검색어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언급된 곳은 LG그룹이었다.

삼성‧현대차에 비해 직원 수가 그리 많지 않은 LG 쪽에 갑질 고발이 더 많은 것은 그 기업 문화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2위는 41건으로 삼성그룹, 3위는 39건으로 롯데그룹, 4위는 35건으로 현대차그룹이었다.

또 최근 변호사, 노무사 등 노동문제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직장 갑질 119'의 상담 건수에서도 LG그룹과 계열사의 갑질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어 LG의 갑질 기업문화가 그동안 관행처럼 쌓여왔음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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