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역사 뒤집기와 보복정치로 대한민국 근간이 흔들려 참담"
文 대통령 "정부 모독, 정치금도를 벗어난 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정치보복 운운한 것에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성명발표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성명서 발표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이 정면충돌하며 정국이 또한번 거세게 소용돌이칠 기세가 역력하다.

검찰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사의혹 수사에 대한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성명에 청와대는 신중한 입장이었지만 하루만에 문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듯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보복 운운한 것에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전한 문 대통령의 어조에는 '노기(怒氣)'가 실려있었다.

이 전 대통령이 자신과는 뗄 수 없는 운명적 관계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까지 거론하며 '정치보복'을 거론한 데 대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이 전 대통령이 마치 청와대가 정치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한 데 대해 이는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며 대한민국 대통령을 역임한 분으로서 말해서는 안 될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정치금도를 벗어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이 검찰 수사와 맞물려있는 국내 정치적 문제에 대해 직접 의견을 표명한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특히 불과 두 문장의 짧은 말이었이지만, 이 전 대통령을 겨냥한 초고강도의 비판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전날 이 전 대통령이 성명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청와대는 "노 코멘트"라며 직접 대응을 삼가는 태도를 취했다.

현직 청와대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전직 대통령과 직접 맞서는 모양새를 피하는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이 우세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날 오전 문 대통령이 참석한 현안 점검회의에서는 이 전 대통령의 성명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정면 반박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검찰 수사에 항변하는 차원을 넘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끄집어내 정치보복을주장한 대목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문 대통령의 강한 뜻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전 대통령의 언행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고 어떤 식으로든 이를 표현하겠다고 결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반응이 자신에게 돌아온 검찰 수사를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연계한 데 대한 인간적인 분노와 불쾌감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을 비롯 '친노무현(친노)'계를 비롯한 진보 진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선택의 배경에 이명박 정부의 '무리한' 검찰수사가 있었다는 인식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거명한 것은 문 대통령으로서는 더는 참기 힘든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7일  자신의 강남 사무실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수사와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7일 자신의 강남 사무실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수사와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최근 '다스' 관련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MB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김희중 전 대통령 1부속실장이 국정원에서 받은 자금 중 1억원이 이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됐다고 검찰 조사에서 증언하는 등 이 전 대통령의 비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하며 검찰 수사를 '정치수사'로 몰아가려 한 이 전 대통령의 발언이 자칫 '역린'을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 대통령이 직접 '분노'라는 단어를 이용해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의 이날 입장표명은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를 '정치수사'인 것처럼 규정한 발언은 법 질서 수호 차원에서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를 내보이려는 차원으로도 풀이된다.

특히 문 대통령은 자신을 주어로 좀처럼 쓰지 않던 ‘분노’라는 표현을 했다. 1차적 분노는 이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언급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전 대통령이 주장하는 ‘정치보복’ 프레임이 작동할 경우 문재인 정부가 중시하는 적폐청산과 권력기관 개혁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하에 강력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성명 발표에서 "최근 역사 뒤집기와 보복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야말로 민주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한 게 불쾌하겠지만 (이 전 대통령이) 사법질서를 부정했다는 지적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의 분노가 개인적인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라며 "대통령의 분노는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입장 발표가 검찰에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취재진의 지적에 대해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청와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말라는 게 국민 명령"이라면서 "그런 꼼수는 쓰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권에서 검찰수사를 받을 때 비교적 '인내'했던 것에 대한 후회도 이번 입장 발표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책 '운명'에 "대통령과 우리는 그때 엄청나게 인내하면서 대응했다"며 "그 일을 겪고 보니 적절한 대응이었는지 후회가 많이 남는다"고 회고했다.

이어 "너무 조심스럽게만 대응했던 게 아닌가"라며 "대통령이 정말로 하고 싶은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대변해 드리지 못한 게 아닌가"라고 적었다.

한편 우리나라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전·전·현 정권이 직접 충돌하는 모습을 지켜봐 온 국민들은 이번 문재인 정부에 70%안팎의 지지율을 유지하면서도 과거 정부에서의 보복성 성격을 띤 정치적 놀음을 답습하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미 과거와 같은 정치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이 전 대통령의 성명은 검찰 수사를 목전에 두고 코너에 몰린 마지막 자존심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강경 발언은 전·현 정권의 감정섞인 정면충돌이라 폭풍전야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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