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및 시민단체, ‘상품권 깡’ 비자금 국회의원들에게 정치후원금 제기
경찰, 지난달 불법정치자금 후원 혐의 압수수색 실시

황창규 KT 회장이 이른바 ‘상품권 깡’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들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KT민주화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황 회장의 즉각적인 사퇴와 구속을 촉구하고 나섰다. 

단체들은 지난 5일 오전 광화문 KT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황 회장이 상품권을 되팔아 현금화하는 방법으로 수십 명의 임원진들의 명의로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들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고 주장했다.

KT민주화연대, 참여연대, 약탈경제반대행동, KT노조 본사지방본부, KT새노조는 “수사가 진행 중인 불법정치자금 기부나 국정농단 부역행위는 방법상으로나 시기적으로 볼 때 황창규 회장이 연임을 달성하기 위한 권력형 비리”라며 “황창규 회장의 국정농단 부역행위에 대한 부실수사를 규탄하며 엄정한 재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달 31일 황 회장과 KT를 불법정치자금 후원 혐의로 전격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KT가 2016년 9월부터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사고 이를 현금화하는 ‘상품권 깡’ 방식으로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상품권 깡’으로 조성된 돈은 KT 상무급 이상 40여명의 임원들 명의로 국회 정무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의원 20여 명에게 300만원부터 많게는 1000만원까지 쪼개서 후원금 명목으로 건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것이다.

특히 황 회장 역시 ‘상품권 깡’ 방식으로 불법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의혹에 대해 일부 인정했다. 그는 앞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 후원금을 그런 식으로 내온 관행은 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KT민주화연대 등은 “현재 경찰이 주목하고 있는 KT의 국회 불법 불법정치자금 제공 혐의는 대외적으로는 기업의 정치자금 제공을 금지한 정치자금법 위반이지만, KT내부적으로는 회사 공금으로 비자금을 만들어 정치후원금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업무상 횡령”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규모 임원진을 동원해 쪼개기 입금을 했다는 점에서 최고경영자에 의한 조직적 지시가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한 매우 조직적 비리”라며 “이 모든 불법 행위의 최종 책임은 황창규 회장에 있다”고 강조했다.

5일 서울시 종로구 KT 광화문 지사 앞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핵심부역, 불법정치자금 기부행위, 권력형비리 주범 황창규 회장 퇴진 및 구속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5일 서울시 종로구 KT 광화문 지사 앞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핵심부역, 불법정치자금 기부행위, 권력형비리 주범 황창규 회장 퇴진 및 구속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황 회장은 앞서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것으로 확인된 후 시민단체와 일부 정치권을 중심으로 퇴진 압박을 받아왔다.

노조 등 단체들은 불법 정치후원금 제공이 황 회장의 연임과 직결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2016년 9월경 황 회장의 연임을 둘러싸고 KT내외에서 비판 여론이 높아지던 시점과 불법 정치후원금 제공이 시작된 시점이 겹치기 때문이다.

KT민주화연대는 “돈을 동원하고 제공한 방식만 불법적인 게 아니라 동기 자체가 황창규 회장의 연임을 위해 회사의 자금과 조직을 개인의 자리보전을 위해 동원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실제로 황 회장은 각종 의혹에도 2016년도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았고, 결국 2017년 1월 연임에 성공해 지금까지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대는 이어 “자신의 개인적 자리보전을 위해 회사의 돈과 조직으로 전방위 로비를 하는 경영행태야말로 우리 사회가 반드시 청산해야할 적폐경영”이라고 규탄했다.

KT민주화연대는 “국민기업이라면 국민들이 바라는 통신비 인하 및 통신 공공성 제고 등 사회 공헌을 중심에 놓고 경영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민적 신뢰를 받을 수 있는 CEO가 필수적”이라며 “황창규 회장이, 또 그의 적폐경영을 뒷받침한 임원진들이 KT에 존재하는 한 KT는 결코 국민기업일 수 없다. KT를 국민기업으로 되돌리기 위한 첫걸음으로 황창규 회장의 퇴진과 비리 관련 임원들에 대한 엄중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초 연임에 성공한 황 회장이 지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에 깊이 연루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시민단체와 일부 정치권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퇴진 압박을 받아왔다. 

최근 이뤄진 경찰의 압수수색으로 비리와 관련된 임원들의 줄소환이 예고돼 있다.

다음 달이면 황 회장이 두번째 임기를 정식으로 시작한 지 2년 차가 되지만, KT를 둘러싼 안팎에서 조여오는 위기감에 황 회장의 거취가 새삼 관심으로 떠오른다.  

하나같이 과거 연임에 성공한 KT 전임 CEO들이 정권교체 이후 검찰 수사를 받다 연임 2년 차를 넘기지 못한 것처럼 황 회장도 전례를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KT 내부관계자는 "대다수 직원은 본연의 업무에 매진하며, 회사가 더이상 혼란에 빠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며 "수사 중인 사항에는 성실히 협조하고 있다"며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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