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위례신도시 아파트 터, 유령조직 ‘고엽제전우회 주택사업단’ 선정
분양 공고문에 ‘보훈처장 추천자, 1순위보다 우선 공급’ 명시…의혹 ‘증폭’

경남 진주시 소재 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
경남 진주시 소재 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에 대한 ‘특혜 분양’ 논란이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난 2013년 경기도 성남 위례신도시 아파트 터(A2-3블록) 분양 당시 LH는 국가보훈처장의 추천서를 받아 단독입찰한 '고엽제전우회 주택사업단'에 토지를 내줬다. 그러나 분양받은 주체가 유령조직인 것으로 드러나 사기분양으로 수백억원을 챙긴 고엽제전우회 회장 등 일당은 구속됐지만 정작 국민의 재산을 잘못 운용한 공기업인 LH는 책임에서 비껴나 있어 새삼 논란이 되고 있다.

위례지구 공동주택용 토지는 수익성 높은 '금싸라기 땅'으로 알려져 건설업계가 눈독을 들였지만 LH의 입찰 공고부터 특정 대상을 위한 특혜였음이 드러났다.

LH가 2013년 6월17일 공고한 ‘공동주택공급 안내문’에는 신청자격의 1순위로 '주택건설실적과 시공능력을 모두 보유하고 자체브랜드로 주택을 공급할 자'로 명시됐다. 이어 2, 3순위 자격도 명기돼 있지만, 주1)에서 "주택법 제9조에 의한 주택건설사업등록업자로서 국가보훈처장의 추천을 받은 자가 1순위보다 우선해 공급받을 수 있으며, 1~3순위는 접수받지 않음"이라고 돼 있다. 

위례지구 공동주택용지 공급 안내문(자료-LH 제공)
위례지구 공동주택용지 공급 안내문(자료-LH 제공)

LH가 대놓고 '보훈처장 추천서'만 가져오면 특혜로 토지를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택건설사업등록업자도 아닌 고엽제전우회의 '주택사업단’이 입찰에 나섰다. 당시 실체가 불분명했고, 현재도 국가보훈처와 고엽제전우회는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현행 보훈 관련 법령은 보훈단체가 할 수 있는 사업에 대해 ‘회원복지 향상을 위한 사업’으로 한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고엽제전우회는 토지분양 등의 수익사업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국가보훈처는 ‘추천서’까지 써주면서 단독입찰에 나서도록 특혜를 안겨줬다.

보훈처가 고엽제전우회에 특혜를 주면서 다른 업체에 추천서를 써줄 이유는 만무했고, LH는 국가 토지 분양에 보훈처 추천서만 받아오면 1~3순위 신청은 접수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단독입찰은 당연했다.

특히 LH의 특혜 분양은 고엽제전우회가 보훈처에 추천서를 요청 공문을 보낸 것이 LH가 분양 공고를 내기도 전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보훈처는 분양 공고 이전부터 LH에 '고엽제전우회가 택지 공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 공문을 수차례 보내기도 했다.

LH는 2013년 6월 17일 '공동주택공급 안내문' 공고를 냈는데 고엽제전우회는 이미 나흘 전인 13일에 보훈처에 추천서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고, 보훈처가 추천서를 발행해 고엽제전우회는 8일 뒤에 사업자로 선정됐다. 사업 선정 과정에서 고엽제전우회는 LH사무실 점거와 협박 등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명의의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 보훈처 추천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명의의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 보훈처 추천서

결국 LH는 국가보훈처의 압력과 고엽제전우회 측의 온갖 행패에 못이겨 국민의 재산을 이들에게 내준 것처럼 보인다.

이 때부터 LH와 보훈처, 고엽제전우회 사이의 유착관계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LH가 특별히 ‘보훈처장 추천서’를 요구한 것이 특정 단체만 입찰에 뛰어들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2013년 당시 택지개발촉진에 관한 법에 따르면 LH 등 공공기관은 아파트 터를 매각할 때 반드시 ‘공개추첨’하도록 돼 있고, 내부 규정 역시 미분양된 터라고 하더라도 바로 수의계약이 아니라 재공고하게 돼 있다. 

하지만 재공고 때 특정한 조건을 달 수 있는지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어, LH가 보훈처 추천이라는 편법을 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당시 이 필지를 분양할 때 ‘공개추첨’을 했지만 분양이 되지 않아 재공고를 냈고, 고엽제전우회 주택사업단이 단독 입찰했기 때문에 선정했다”면서 “재공고 당시 ‘국가에 헌신한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방침을 규정으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주택건설사업등록업자로서 고엽제전우회 주택사업단이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은 단체였음에도 그것을 알아보지 않고 우선 공급 대상자로 선정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국가보훈처의 추천서와 함께 단체가 낸 서류를 토대로 검토한 결과 당시에는 이상이 없었다”며 “보통 다른 입찰의 경우에도 대상자가 낸 서류를 토대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1836억원에 위례신도시의 4만2000㎡ 토지 공급을 받은 고엽제전우회는 이 땅을 중소건설사에 위탁했고, 이 건설사는 아파트 분양 등을 통해 218억원의 수익을 얻었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28일 이형규 고엽제전우회 회장과 사무총장 김모씨, 사업본부장 김모씨 등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공갈 및 사기 등 혐의로 구속되고, 건설사 대표도 구속됐다. 당시 지속적으로 특혜를 종용하며 추천서를 내준 박승춘 보훈처장은 검찰 조사 중에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건의 한 축인 LH측에서는 아무도 제재를 받지 않고 있어 공기업으로서의 책임소재를 회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조사 결과가 아직 LH 잘못이라고 나온게 아니다"라며 "LH 측의 과실이라고 할 만한 이유 없어 책임 운운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국민의 세금을 통해 운영되는 LH는 국민들의 기업이다. 130조가 넘는 부채총계에도 한 해 1000억대의 성과급 잔치, 사업자 선정비리, 임직원들의 뇌물수수 및 성추행까지, LH의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현아 의원실이 지난해 LH로부터 제공받은 최근 5년간 임원 및 직원의 비위·비리 현황 자료를 보면 비리 혐의가 드러난 임직원이 무려 47명에 달한다.

LH는 경영의 근본적인 대책과 임직원들 비리 척결에 대한 의지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일요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