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 다툼여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할 필요…구속 사유 인정 어려워”
딸·아내 이어 본인까지 한진그룹 총수일가 구속영장 기각…여론 악화될 듯

수백억 원대 상속세 탈루 등 비리 의혹을 받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6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 밖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백억 원대 상속세 탈루 등 비리 의혹을 받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6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 밖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백억원대 상속세 탈루 등 비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조양호(69) 한진그룹 회장이 일단 법정 구속을 피하게 됐다. 그동안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갑질로부터 시작해 세금탈루까지 전방위적인 조사를 진행했지만 사안마다 관련 인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대부분 기각돼 법원의 판단이 국민정서와는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남부지법은 6일 오전 3시 20분경 조 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피의사실들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둘째 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  한진그룹 총수일가에 대한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돼 한동안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담당했던 김병철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영장 기각 사유에 대해 “피의사실들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이와 관련된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어 현 단계에서 구속해야 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지난 1999년 항공기도입 리베이트 과정에서 수백억원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구속된 이후 19년 만에 다시 구속될 위기에 놓였지만, 이날 영장이 기각되면서 법정 구속을 면했다.

이번에는 수백억대 회삿돈을 빼돌리고 ‘사무장 약국’을 열어 줄잡아 천억원이 넘는 건강보험금을 부당하게 타낸 혐의를 받았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횡령·배임·사기, 약사법 위반 등의 혐의다. 

조 회장은 5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20분까지 약 7시간 20분에 걸쳐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았다. 보통 영장실질심사가 2~3시간 정도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긴 시간이 걸린 셈이다. 

조 회장은 영장심사에서 검찰의 일부 공소사실에 대해 반박하는 등 적극적으로 방어권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김종오)는 지난 2일 조 회장에 대해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위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사기, 약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

그동안 조 회장은 부친인 고(故) 조중훈 전 회장의 해외 보유 자산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상속세를 내지 않은 혐의로 고발돼 검찰 조사를 받아왔는데, 조 회장과 그의 남매들이 납부하지 않은 상속세는 5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검찰은 조 회장이 해외금융계좌에 보유한 잔고 합계가 10억원을 넘는데도 과세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다만 상속세 포탈 부분은 더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영장 범죄사실에 담지 않았다.

이와 함께 조 회장은 일가 소유인 면세품 중개업체를 통해 이른바 ‘통행세’를 걷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챙기고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고 있다.

여기에 조 회장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의원 처남 취업청탁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을 당시 자신의 변호사 비용을 회삿돈으로 지급하게 하고, 2014년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 때 맏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재판에서도 변호사 비용을 회삿돈으로 내게 한 혐의를 받는다.

이 밖에도 조 회장은 2000년부터 인천 중구 인하대병원 근처에 약사와 함께 ‘사무장 약국’을 열어 18년간 운영하고, 그동안 약사 자격이 없는 사람을 내세워 부당 요양급여로 받아간 건강보험금은 천억원이 넘는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8일 조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15시간이 넘는 고강도 조사를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조 회장은 혐의를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구속영장 재청구를 검토할 방침이다.

한편, 조 회장의 둘째 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이른바 ‘물벼락 갑질’ 이후 조 전 전무와 조 회장 아내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이어 이번에 조 회장까지 사정당국이 한진 총수 일가에 대해 신청 혹은 청구한 구속영장은 잇따라 기각됐다.

이 때문에 안그래도 갑질 사태로 인한 논란으로 한진그룹 총수일가에 대해 악화된 여론이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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