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업종 숙련기능 외국인의 비자 심사, 서류 보완 기회도 안줘

국가공인행정사사무소 대표 최유리 행정사
국가공인행정사사무소 대표 최유리 행정사

[전문가칼럼-최유리행정사] 우선, 여러분이 다른 나라에 가서 5년 이상 일했고 이러한 경력으로 장기비자를 받으려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비자를 변경하려니 당신의 나이ㆍ학력ㆍ근무할 회사에서의 연봉ㆍ2년 이상 모은 적금통장ㆍ1년 이상 소유한 부동산ㆍ거주 나라에서의 연수경험ㆍ봉사활동ㆍ언어시험성적표 등 수많은 항목으로 점수를 산정해 점수가 높은 사람부터 100명까지만 추려 비자를 내준다고 합니다.

세상에 이런 비자가 어디있냐고요?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어업ㆍ농업ㆍ 뿌리기업ㆍ제조업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꺼려하고 피하는 3D 업종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더 일하기 위해 신청하는 'E-7-4' 라는 비자입니다.

'E-7-4'는 숙련기능인력인 외국인에게 발급해주는 전문비자로, 이 비자를 받으면 한국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 뿐더러 자국에 있는 가족도 한국으로 초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5년 이상 한국의 3D 업종에서 근무했던 외국인들이 어떻게 해서든 발급받고 싶어하는 귀한 비자입니다.

하지만 평가점수가 높은 순으로 선정되는 'E-7-4' 비자를 신청하려면 외국인은 점수를 높이기 위해 2년 전부터 80만원 이상씩 불입한 적금 통장과 기본 이상의 한국어 독해 실력, 5천만원 이상의 부동산 소유가 필요할 뿐더러, 그 힘든 노동을 끝내고 1년 이상 봉사활동도 해야 합니다. 물론 이 모든 항목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고득점부터 100명을 선발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모든 항목의 점수를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고군분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렇게 힘들게 ‘E-7-4‘로 비자변경을 신청한다 하더라도 변경되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일례로 필자는 올해 7월, 한 외국인의 ‘E-7-4‘비자 변경을 도왔고, 이 외국인이 근무한 업체는 금형주조 뿌리기술로 28년간 일본과 미국 그리고 국내에 주물제품을 수출하고 판매해 온 업체였습니다.

'E-7-4' 비자 신청 시, 제조업에서의 근무점수보다 뿌리기업에서의 근무점수가 더 높게 측정되기에 필자는 해당업체가 뿌리기업이라는 <뿌리기업확인서>와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발급하는 <뿌리기술전문기업 지정증>까지 준비해 비자변경신청을 도왔습니다.

허나 뿌리기업확인서는 2017년 발행서류였고 서류의 유효기간은 3년이였으나, 현재 서식이 변경됐다는 이유로 6년 이상 뿌리기업에서 근무했다는 것을 소명하지 못해 비자변경이 불허됐습니다. 회사의 사업개시일이 <뿌리기업확인서>에 1990년으로 기록되어 있음에도 출입국은 변경된 서류로만 입증된다고 주장하며, 형식적인 심사로 불허처분을 고수하였습니다.

이렇게 비자 변경이 힘들다보니 간절하고 절실한 외국인을 상대로 악덕브로커ㆍ여행사ㆍ컨설팅 업체들이 활개를 칩니다. 점수를 높여주겠다는 감언이설로 대충 서류를 맞춘 뒤 외국인의 비자변경이 불허돼도 나몰라라 하는 겁니다. 법무부의 분기마다 조금씩 변경되는 지침은 이러한 만행을 더욱 부추기고, 외국인들은 ‘E-7-4' 비자 신청을 몇 년간 준비하고도 결국 바뀐 지침으로 신청조차 못하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E-7-4' 비자는 손바닥 뒤집듯이 변경되는 지침이 아닌 조금 더 신뢰할 수 있는 명확한 지침으로 심사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출입국 직원들의 편의대로 보완도 없이 형식적인 심사를 한 후 일방적으로 비자변경자를 선발하는 방식도, 실질적인 심사와 민원인의 편의에 맞춰 부족한 서류를 보완해 나가며 심사되는 조금 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변경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좋아서 그 험하고 힘든 3D업종에서 일하면서도 감사해하며 앞으로도 그 일을 계속하기위해 열심히 비자변경을 준비하는 외국인들입니다. 그러한 성실한 외국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책을 보여주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그들의 비자업무를 대행해주는 행정사로서 간절히 바래봅니다.

 

저작권자 © 일요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