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이사회 "법적 근거 없는 일괄지급, 법원 판단에 맡기기로"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즉시연금 미지급금에 대한 일괄 지급 압박을 받던 삼성생명이 사실상 이를 거부하고 법원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삼성생명은 지난달 26일 이사회를 열고 4300억원 규모의 즉시연금 미지급금 가운데 일부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소송 등 법적 판단을 받은 뒤 지급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날 삼성생명은 이사회에서 금융감독원이 요구한 즉시연금 미지급금에 대한 일괄지급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론냈다.

삼성생명 이사회는 의결 문건에서 “일괄지급은 법적 쟁점이 크고 지급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이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며 “법원 판단에 따라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는 자칫 분쟁조정위원회 판단을 전가의 보도 삼아 모든 분쟁을 일괄 적용하라는 지침이 끊이지 않을 우려를 고려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특히 일괄구제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다만 이사회는 고객 보호 차원으로 해당 상품 가입 고객에게 제시된 ‘가입설계서 상 최저보증이율 적용 시 예시 금액’을 지급하라고 경영진에게 권고했다.

이같은 이사회 결정으로 삼성생명은 당초 금감원이 미지급금 일괄지급안에서 권고한 4300억원에 달하는 미지급금 규모를 이번 가결된 수정안 기준에서는 370억원으로 줄이게 됐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좌)과 현성철 삼성생명 대표이사(우)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좌)과 현성철 삼성생명 대표이사(우)

앞서 분조위는 삼성생명 측에 즉시연금 미지급금에 대해 일괄 지급을 권고했고 이후 금융당국은 타보험사들에게도 같은 즉시연금보험으로 계약했던 모든 소비자에게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라고 권고했었다.

지난달 9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금융감독 혁신과제'를 발표하면서 "금융사의 경영실태를 큰 그림에서 파악, 점검해 개선사항을 도출하는 종합검사를 4분기부터 다시 실시하겠다"며 "일정 검사 주기마다 관행적으로 종합검사를 실시했던 과거 관행과 달리 소비자 보호 등 금융사의 경영이 감독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회사를 선별해 실시하는 등 유인부합적 방식으로 시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부활을 예고한 금감원의 첫 종합검사 첫 타깃으로 삼성생명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보복성 검사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만큼 검사 방향과, 규정, 대상을 정하는 종합검사 가이드라인이 다음달 중 마련되는대로 첫 종합검사 대상도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때문에 금감원은 삼성생명의 이같은 결정이 '신의성실'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판단, 향후 검사때 즉시연금 상품을 집중적으로 살펴 법 위반 여부에 대해선 엄중 제재할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약관, 산출방법서, 사업방법서 등 기초서류상 위법성 보다는 판매과정에서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예상되는 만큼 검사를 통해 중징계가 내려질 경우 결국 앞선 '자살보험금 사태'와 같은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생보업계 전체 즉시연금 미지급금 규모는 1조원대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삼성생명이 절반에 가까운 4300억원 가량을 떠안고 있다. 이 외 한화생명 850억원, 교보생명 700억원 수준이다.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의 눈치만 살피던 타보험사들의 향후 판단도 예의 주시된다. 삼성생명이 금감원 입장과 다른 결론을 내놓으면서 앞으로 자살보험금 사태처럼 장기 소송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 금감원은 삼성생명을 상대로 한 검사에서 법 위반 사항이 드러날 경우 엄중 제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추후 검사를 통해서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규모가 정확히 산출되면 이를 근거로 삼성생명을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보험금을 주라고 강제할 순 없어도 금감원이 할 수 있는 제재 권한은 적극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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