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사망 및 사지절단…한전,외면한 채 비용 절감 추구
질타 이후 내 놓은 안전 대안에도 뒷말은 무성

전력공급을 위해 설립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사장 김종갑)가 하청업체의 노동자를 마치 '일회용'정도로 '소모품' 취급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공기업인 한전이 공사 비용 절감을 내세우며 안전을 위한 고가의 공구 구매 부담마저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공기업마저 장비구매 비용과 작업 위험을 하청업체에 부담시킨다는 비난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전 측이 제안한 안전 공구에 관련한 뒷말이 무성히 나온다.

한전은 하청업체를 통해 각 지역의 전선을 유지·보수한다. 이를 위해 전선 교체 등의 작업을 하는데 이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전기가 차단되지 않고 흐르는 상태로 작업하는 활(活)선 방식과 전기가 차단된 사(死)선 방식이다.

그 중 활선 방식의 한 공법인 전선이선공법은 작업자가 전선이선기구와 고무장갑에 의지한 채 22.9kv의 전기가 흐르고 있는 전선을 직접 손으로 다룬다.

2005년 당시 한전 측은 정부의 신기술 우대정책에 발맞춰 전력신기술 10호로 지정된 ‘전선이선기구를 이용한 무정전공법’을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공법은 작업자가 전기가 흐르는 전선을 직접 손으로 만지면서 하는 작업인 만큼 지난 2001년 적용 시험 단계부터 작업자의 감전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로 이 공법이 적용된 이후 작업 도중 심각한 사고를 유발하기도 했다.

이 전선이선공법이 도입된 이후 지난 2016년까지 28명의 사망자와 125명의 부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지로 내몰리는 하청 송배전 노동자

지난 2014년 전정희 19대 전 국회의원은 한전 측에 전선이선공법 현장 평가서를 요청해 이를 분석한 자료를 발표했다.

전 의원은 “작업자의 안전성이 무시된 채, 공사원가 절감의 공을 인정받은 전력신기술(전선이선공법) 개발업체는 지난 10년간 465억8200만원의 기술사용료을 챙겼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 의원은 “한전이 구체적으로 얼마의 예산을 절감했는지 파악 중이지만 이 공법을 사용해 절감한 예산이 1000억여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비활선으로 작업하면 정전이 발생해 해당 지역에서 정전으로 인한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직접 활선 방식인 전선이선공법은 작업 중 전기를 끊지 않아 인근 지역에 정전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전선이선공법을 도입하기 이전 적용하던 방식인 바이패스(우회)케이블을 이용한 간접 활선 방식보다 비용이 절감되며 작업 시간도 단축된다”고 도입 취지를 밝혔다.

바이패스 케이블이란 전선에 흐르고 있는 전기를 케이블을 통해 우회시켜 작업구간 내에 전기를 차단하는 공법에 사용되는 간접 활선 도구다.

그러나 한전 측이 주장하는 정전으로 인한 피해에 관해서는 건설노동조합과 한국전기공사협회은 논리가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전봇대 2개 혹은 3개의 사이에서 전선 교체작업 등을 할 때 바이패스 케이블을 통해 전기를 우회시켜 흐르게 해 가정집 등 주변 지역에 정전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전기공사협회도 역시 같은 입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바이패스는 명칭 그대로 전기를 우회시켜 흐르게 해 전체적으로 활선이지만 작업구간 내에서는 사선 상태이다. 따라서 활선 작업에 비해 작업자의 감전 위험이 크게 낮아지면서 주변 민가나 회사 등에 정전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전봇대 3개 범위의 긴 구간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긴 길이의 바이패스 케이블과 케이블을 적용할 수 있는 발전차 등의 장비들이 있어 해당 지역에 정전을 일으키지 않는다"며 "다만 이 작업은 여러 바이패스 장비를 설치해야 하는 만큼 긴 작업 시간이 소요돼 인건비 등 작업 단가가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즉, 한전이 이 공법을 적용한 데에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안전은 무시된 채 작업 단가만을 낮추기 위한 이유라는 것이다. 

□ 전선이선공법 폐지한다던 한전, 작업지시서는 전선이선공법으로?

지난 2016년 한전은 직접 활선 공법인 전선이선공법이 작업자의 안전을 가장 크게 위협한다는 의견을 수렴, 이 공법을 전면 폐지한다고 밝혔다.

한전은 그간 전선이선공법으로 작업을 진행해 온 모든 현장에서는 바이패스 공법이나 공사용 개폐기 공법 등 다른 공법을 이용해 공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또 바이패스 기기 설치가 불가능한 지역에 대해서는 사(死)선공법도 진행되지만 소비자들의 불편을 없애기 위해 이동식 발전기 등을 동원해 무(無)정전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올해 7월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 위원회의에서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직접활선공법을 폐지했느냐’는 질문에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은 “직접 활선 방법은 다 폐기했다”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는 “2016년 당시 직접 활선 공법인 전선이선공법을 폐기하면서 이전 공법인 바이패스 케이블을 이용한 간접활선공법을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작업 현장에서는 다른 얘기가 나온다. 건설노조 측의 입장은 한전의 주장과는 아예 그 결이 다르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한전으로부터 작업지시서가 내려올 때부터 전선이선공법으로 설계된 작업 지시서가 내려온다”며 “이에 따라 송배선 노동자들은 지시서 대로 고무장갑을 낀 채 22.9kv 전선을 손으로 직접 다루며 위험한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 간접 활선 공법 ‘스마트 스틱’ 도입에도 뒷말

올해 초 한전은 간접활선공구를 전면 도입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간접활선공구 도입에도 뒷말이 무성했다.

한국전기공사협회에 따르면 한전이 도입을 추진했던 간접활선공구, 스마트 스틱은 절연스틱(로터스틱ㆍ핫스틱ㆍ핸드스틱ㆍ그랩스틱)에 절단기ㆍ피박기ㆍ테이핑기ㆍ압축기 홀더ㆍ클램프 회전기 등의 공구를 달아 작동된다. 전기가 흐르는 활선과 작업자 사이의 거리가 있어 감전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크게 줄어든다.

하지만 이 스틱의 무게 탓에 지상이 아닌 공중에서 그것도 버킷 박스 안에서 작업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 스틱은 길이 2m로 자체 중량만 2.5㎏이다. 여기에 각종 공구를 달면 최대 7.5㎏로 늘어난다.

또 가격 부담 역시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스틱 1세트의 가격은 2800만원이다. 하청업체의 공사수행 범위가 3000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큰 부담이 되는 가격이다.

게다가 하청업체는 한전과 2년 마다 경쟁 입찰을 통해 재계약을 하는 만큼 계약이 확실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위 금액을 선뜻 부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편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MBC PD수첩은 '한국전력의 일회용 인간들'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한전 측이 하청업체에 스마트 스틱을 강제로 구매케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 하청업체 대표는 “우리가 (스마트 스틱을) 안살 수가 없었다. 구매 기간을 주지도 않았다”며 “스틱을 구매하고 시험 성적서를 제출해야 통과 됐다”고 말했다. 또 “100% 강매”라고 덧붙였다.

한전 관계자는 “(스마트 스틱) 도입 당시 유예기간을 뒀다”고만 말할 뿐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노조 측의 주장한 간접 활선 공법을 한전이 받아들여 스마트 스틱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말하면서도 “스마트 스틱 도입 단계에서 시연회를 할 때부터 업체들은 불만이 많았다”고 전했다.

또 “스마트 스틱 도입 초기 단계에서 한전이 업체로 부터의 의견 수렴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송배선 노동자, 2년마다 재계약하는 임시직 신분…산재 처리도 안돼

이에 덧붙여 그는 “하청업체가 2년 마다 한전과 재계약을 하듯 배전 노동자 역시 하청업체와 2년 마다 재계약해야 하는 임시직 신분”이라며 “하청업체에서 산업 재해 처리를 한 이력이 재계약을 위한 입찰에서 불리하게 작용해 사실상 하청업체 측에서는 산재처리를 하지 못하고 병원비와 치료비를 지급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8년간 송배전 노동자 19명이 사망하고 71명이 화상 및 사지절단을 당해도 이 산업 재해는 한전 측 산재가 아닌 바, 한전의 각 지사들마다 열띤 무재해 날짜 갱신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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