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당초 근로계약에 명시 돼 있지 않은 내용 강요…근로 계약 해지는 적법"

근로 계약에 없는 사항을 부당하게 강요 받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퇴직한 직원이 회사로부터 억대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했다. 최근 법원은 이와 관련 사측에 책임이 있어 근로계약이 합법적으로 해제 됐다고 보고 직원들의 손을 들어 줬다.  

경기도 부천 소재 한 휴대폰 판매 회사에서 텔레마케터로 일해오던 이모(48)씨 등 8명은 회사가 8월 비수기 동안 무급휴가를 낼 것을 강요하자 어쩔 수 없이 그 달에 퇴사를 선택했다. 이들로써는 최저임금 수준인 많지 않은 월급이 무급휴가를 통해 또 반토막 날 것을 우려해 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는 억대의 매출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1억4466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회사는 "휴가철 비수기라 영업 실적이 부진하니, 8월 한 달 동안 15일씩 무급휴가를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이것이 발단이 됐다.

130만원에서 17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일하던 직원들은 반으로 줄어들 월급을 우려해 "무급휴가를 쓰지 않고 계속 정상근무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는 부당한 무급 휴가를 강행하려 했다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씨 등에 의하면 회사가 "무급 휴가를 쓰지 않을 거면, 8월 목표 실적을 1.6배로 올리고 이를 달성하지 못할시 기본급을 깎겠다"는 통보를 일방적으로 했다.

결국 그달을 넘기지 못한 이씨를 포함한 8명의 직원들은 지난해 8월 21일, 한날 한시에 사직서를 내고 더는 출근하지 않았다.

그러나 3개월 뒤, 이씨 등은 회사로부터 민사소송이 접수됐다는 통보를 받고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사측은 "근로계약서에 '퇴직 1개월 전에 회사에 통보해 인수·인계를 해야 하고 퇴사에 대한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돼 있는데, 미리 알리지 않고 협의도 없이 갑자기 퇴사해버리는 바람에 회사가 손해를 봤으니 배상하라"고 주장했다.

이씨 등에 의하면 회사는 100만원대 월급을 받던 8명의 직원에게 총 1억 4466만원의 손해액을 청구했다. 각 직원이 매달 내왔던 매출액 평균에서 월급을 뺀 값이었다. 수천만원대 매출을 냈던 직원은 청구된 손해액도 많았다.

직원들은 대부분 아이를 키우며 생계비를 벌기 위해 텔레마케터로 나선 엄마들이었다.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기초생활수급을 받아 생활하는 여성도 있었기 때문에 국가의 법률구조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이 됐다.

직원들의 편에 서게 된 법률구조공단 부천출장소 박범진 변호사는 "회사가 무단으로 근로조건을 변경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한 퇴직은 정당하다"고 변론했다. 근로기준법엔 "임금·근로시간·휴일·연차 유급휴가 등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근로조건이 사실과 다를 경우 근로자는 즉시 근로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17·19조)"고 돼 있는데, 회사가 계약서에 없던 무급휴가를 강요했으니 퇴사는 직원들의 선택이었다는 주장이다.

법원은 당초 근로 계약에 명시 돼 있지 않은 무급 휴가를 회사가 부당하게 강요했다고 보고 노사의 근로계약은 적법하게 해제 됐다는 입장이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민사합의1부(부장 김연화)는 "회사가 이씨 등에게 당초 근로계약 내용에 없던 15일의 무급휴가를 사실상 강제하며 불리한 근로조건을 강요했고, 이로 인해 이씨 등이 퇴사를 결심한 것으로 봄이 자연스럽다"면서 "이 퇴사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것으로 원고와 피고들 사이의 근로계약은 적법하게 해제되었다"고 봤다.

저작권자 © 일요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