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 "중재 절차 권고 사항…강제성은 없어" 실효성 의심

세종시 소재 국토교통부 청사

내년부터 새로 산 자동차에 반복적으로 고장이 발생하면 차를 교환·환불받을 수 있는 제도가 시행 돼 자동차 소비자들의 이목이 모아진다. 동력전달장치, 조향장치, 제동장치 같은 중요 부위는 3번째 하자가 반복되면 교환·환불 대상이 된다. 다른 부품은 4차례 발생했을 때 해당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제도상 중재가 임의 절차일 뿐 법률상 무조건 해야 하는 강제조항이 아닌 만큼 실효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나온다.

12일 자동차업계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른바 '레몬법'으로 불리는 반복적 고장에 교환·환불받을 수 있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하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내년 1월부터 전면 시행된다.

레몬법(Lemon law)에서의 '레몬(lemon)'은 영미권에서 결함이 있는 자동차, 불량품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이는 달콤한 오렌지(정상 제품)인 줄 알고 샀는데 매우 신 레몬(불량품)이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법은 인도된 지 1년 이내의 주행거리가 2만㎞를 넘지 않은 새 차의 고장이 반복될 경우 자동차제작사가 이를 교환 또는 환불해주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원동기와 동력전달장치, 조향장치, 제동장치 등 자동차의 주요 부위에서 똑같은 하자가 발생해 2번 이상 수리 후에도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한 경우 자동차제작사는 차를 교환·환불해 줘야 한다.

또 자동차 소비자는 이같은 주요 부위가 아닌 구조와 장치에서 똑같은 하자가 4번 발생하면 역시 교환이나 환불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주요 부위 여부에 관계 없이, 1번만 수리했더라도 누적 수리 기간이 30일을 넘는다면 역시 교환·환불 대상이다.

이런 하자가 발생하면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위탁 운영하는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가 중재에 나서게 된다.

자동차안전심의위는 자동차 분야 전문가들(최대 50명)로 구성되며 필요할 경우 자동차제조사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성능시험을 통해 하자 유무를 밝혀낼 수 있다.

국토부는 레몬법이 시행되면 자동차 소비자의 권익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새로 시행되는 레몬법의 특징은 현행 제도보다 법적 구속력과 전문성이 크게 강화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써는 소비자들이 자동차에 이상이 발생했을 때 자동차제조사와 직접 협의를 하거나 민사 소송 또는 한국소비자원의 조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동차는 부품이 2만∼3만 개에 달하다 보니 일반 소비자는 차량의 하자 여부를 정확히 알기 힘들다"며 "자동차안전심의위는 차량 전문가들로 구성돼 소비자와 제조사 간 이 같은 정보 비대칭을 해소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즉 국토부는 심의위가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만큼 자동차제조사가 소비자를 속이고 있는 지 여부를 판단해 자동차 소유주의 권익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심의위가 조사를 거쳐 내린 중재 판정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어 자동차제조사가 교환·환불을 해주지 않을 경우 이를 강제집행할 수도 있다.

또 레몬법은 '6개월 입증 전환 책임' 조항을 뒀다. 차량이 소유자에게 인도된 지 6개월 이내에 하자가 발견됐을 때 이는 당초부터 있었던 하자로 본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앞으로는 소비자가 하자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자동차제조사가 하자가 없었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법 시행을 앞두고 심의위의 구성 등 실무 절차 마무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업체들도 레몬법 시행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레몬법이 시행되면 소비자가 자동차를 살 때 '하자 발생 시 신차로 교환 또는 환불해준다'는 내용이 담긴 서면계약서를 써야 하는 등 지금과는 절차가 다소 달라진다. 또 완성차업체들은 레몬법이 동일한 부위에서의 하자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때 교환·환불하도록 하고 있는 만큼 자동차 정비업체가 더 철저히 정비·수리에 나서도록 할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차업체 관계자는 "중재나 각종 요청사항에 대응할 수 있는 업무 절차와 조직 등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자동차 제조 공정 자체를 개선할 계획은 없다고 완성차업체들은 밝혔다. 또다른 완성차업체 관계자는 "이미 국내에서도 국제적 기준에 맞춰 자동차를 생산해 수출까지 하고 있다"며 "레몬법이 시행돼도 제조 공정까지 손볼 여지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 한국판 레몬법이 시행돼도 여전히 미국 등 다른 나라에 견줘 소비자 권익 보호가 미흡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중재 절차를 밟는 것이 권고 사항이어서 강제성이 없고, 중재 결과에 대해서도 소비자가 계속 문제를 제기할 경우 기존과 마찬가지로 소송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처럼 집단소송제가 있다면 이 법이 더 강력해질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집단소송제가 시행되지 않아 한계라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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