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주의만 당부하더니기업은행 오판과 늑장대응으로 고객 피해만 키워

고객과 경찰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직접 '지급정지'를 독촉했지만 기업은행이 이를 거절해 결국 피해만 커졌다는 지적이다.
고객과 경찰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직접 '지급정지'를 독촉했지만 기업은행이 이를 거절해 결국 피해만 커졌다는 지적이다.

갈수록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피해 사례가 늘어나면서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은 금융소비자들에게 철저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지만, 정작 금융기관인 은행에서 금융피해를 예상한 고객이 지급정지를 요청했지만 늑장 대응하면서 결국 피해를 키운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 고객인 창원의 중소기업 대표 ㄱ씨는 사건 당시 가짜 거래처에 송금한 돈이 보이스피싱임을 확신하고 해당 은행인 기업은행에 급하게 계좌 지급정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기업은행 측은 보이스피싱 피해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다며 경찰에 신고를 한 후에 다시 지급정지 신청을 하라고 답변했다. 경찰이 ㄱ씨의 이메일, 거래 내역 등을 검토한 결과 보이스피싱 범죄로 판단하고, 직접 기업은행에 팩스로 범죄계좌 등록에 따른 지급정지 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은행 측은 보이스피싱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지급정지를 거절했다.

다음날 결국 ㄱ씨는 보이스피싱의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최근 금융기관을 사칭해 대출을 해주겠다거나 대출금리 인하를 미끼로 접근하는 '대출사기' 수법이 급증한 가운데 각 은행들마다 금융 소비자들에게 강력하게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은행 측의 판단미숙과 늑장대응으로 사전에 피해를 줄이거나 막을 수 있는 기회마저 상실했다. 오히려 금융사기를 당할 시간을 제공한 꼴이 됐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ㄱ씨는 지난 8월 28일 오후 2시46분께 평소 거래하던 프랑스 바이어측으로부터 받은 이메일에 안내된 기업은행 계좌로 943만5000원을 송금했다.

ㄱ씨가 돈을 송금한 데에는 며칠 전 프랑스 바이어로부터 ‘물품결제 대금을 원화로 대신 송금해주면 나중에 처리해주겠다’는 이메일을 받았고, 이후 수차례 이메일 교환과 전화 통화를 했기 때문에 특별한 의심 없이 거래를 했다. 

하지만 돈을 송금한 후 이날 오후 9시께 수신자에게 확인 전화를 하자 술에 취한 듯한 알아듣기 어려움 목소리만 들리고 그 후로는 더이상 통화가 되지 않아 ㄱ씨는 사기였음을 직감했다. 

그는 곧바로 기업은행 콜센터에 전화해 송금된 계좌에 대해 지급정지를 요청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은행 측은 보이스피싱 피해인지 판단이 어렵다며 수사기관에 신고 후 다시 지급정지를 신청할 것을 요구했다.

ㄱ씨는 창원 중부경찰서를 직접 방문해 신고했다. 경찰도 신속하게 ㄱ씨의 이메일, 거래내역 등을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보이스피싱 범죄로 판단, 기업은행에 직접 범죄계좌 등록에 따른 지급정지 요청 공문을 팩스로 보냈다. 오후 10시 17분께 공문을 보낸 이후 수차례에 걸쳐 콜센터에 전화해 지급정지를 요청했지만 은행 측은 이 사건이 보이스피싱 유형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지급정지를 거절했다.

요청한 지급정지만 받아줬어도...

송금한 계좌에서 이날 오후 5시 전까지는 390여만원이 빠져나갔지만 자정이 지난 29일 오전 0시에서 1시 사이에 7차례에 걸쳐 545만여원이 집중적으로 빠져나갔다. 경찰의 공문을 접수한 오후 10시 반 이후라도 지급정지 요청을 받아줬어도 더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지만 지급정지는 하루가 지난 29일 오전 10시께 뒤늦게 받아들여졌고 계좌 잔액인 2만8000원에 대해서만 지급정지 처리가 내려졌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약 1000만원은 적지 않은 돈이고 더욱이나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ㄱ씨에게는 기업 운영상 자금 회전에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는 며칠동안 잠을 못이루며 피해 금액을 막지 못한 책임에 대해 기업은행에 피해구제를 호소하고 소송을 준비했다. 

이 같은 내용으로 경남신문의 보도가 나가자 그제서야 기업은행 측은 피해자에게 연락을 취했고 피해 보상에 대해 적극 노력하겠다는 뜻을 보내왔다.

경남신문은 후속 보도에서, 기업은행은 보도가 나가기 전까지도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해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기업은행은 ‘기업은행’이라는 실명을 밝혀야 했는지 보도 내용에 대해 의문을 표현했다고 전했다.

기업의 이미지는 중요하고 개인의 피해는 묵과해도 되는 것인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경찰도 기업은행의 대처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수사기관의 요청을 거부한 사례는 전무후무할 뿐더러 경찰의 지급정지 요청을 받아들였다면 고객 피해는 물론 은행으로서도 오히려 책임 소지에서 부담을 덜 수 있는 문제였다. 

이에 대해 <일요경제>의 취재과정에서 기업은행 관계자는 "보도와는 상관 없이 금융소비자의 보호 차원에서 은행이 책임감을 느끼고, 피해자와 원만한 합의를 했다"며 "현재 피해자가 소송을 취하한 상태"라고 밝혔다.

고객이 요청하는 지급정지에 관한 사측의 내부규정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대한 질문에는 "밖이라서 은행에 들어가는 대로 알아보겠다"며 "분명 내부규정이 마련돼 있을 것이다.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기업은행 측은 고객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해 보이고, 은행 직원들도 내부 규정 숙지와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이 좀더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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