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형태와 분량의 소설이 존재하는 것이 이상적인 문학 풍토"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한 식당에서 진행한 '문신' 출간 기자간담회서 발언하고 있는 윤흥길 작가.

'장마', '완장',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 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윤흥길 작가는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한 식당에서 진행한 '문신' 출간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국 소설이 미세담론으로 많이 흐르는 현재, 나이 먹은 나라도 큰 문제를 크게 다루는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문신'을 집필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1∼3권이 출간됐고, 내년 상반기에 4∼5권이 나올 예정인 '문신'은 윤 작가가 20년 만에 선보인 대형 장편소설이다.

소설 '문신'은 황국신민화 정책과 강제노역이 한창인 일제강점기를 소설의 배경으로 설정, 산서 지방 천석꾼 대지주 최명배 가문을 중심으로 같은 시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는 인물들의 삶을 생생히 그려냄으로써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 작가는 소설의 제목인 '문신'이라는 어휘는 전쟁에 나가 죽으면 시신으로라도 고향에 돌아와 묻히고 싶다는 염원 하에 몸에 문신을 새기는 '부병자자'(赴兵刺字) 풍습에서 왔다고 설명했다.

윤 작가는 "부병자자는 우리 민족의 독특한 치열한 귀소본능을 상징한다"며 "탄광 강제노역을 하는 조선 남자들이 아리랑 곡조에 맞춰 개사해 부른 '밟아도 아리랑'도 '밟아도 죽지만 말아라. 또다시 꽃피는 봄이 오리라'는 가사처럼 죽지 않고 살아서 반드시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면서 어휘 선택, 수사법 등 문장에 공을 가장 많이 들여 전라도의 판소리 정서, 율조 등을 다뤄 독자들에게 전라도 시골 토박이 정서를 전달하려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윤 작가는 특히 "최명배를 그리는 데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며 "최명배는 못된 인간이지만 인간의 본성을 굉장히 가장 잘 드러내는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짧게 등장하는 인물들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윤 작가는 강조했다.

어릴 적 열병을 앓아 정신지체아가 된 머슴 춘풍이, 부엌 어멈 섭섭이네 등도 개인의 성격적, 언어적 특성 등을 살려 차별화했다.

윤 작가는 "'문신'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본인의 노력의 산물"이라며 "50년 동안 작가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국어사전의 단어를 익혀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그동안에는 가독성을 위해 단어 선택 등에서 타협을 많이 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독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가 쌓아온 모든 것, 제 문학적 역량을 다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문학에서 다양성을 강조한 윤 작가는 "이 작품은 시대를 역주행하는 듯 보인다. 다들 글로벌 시대를 얘기하고 있는데 우리 민족, 한국인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다. 하지만 우리가 거쳐온 과거를 되돌아봐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낡은 주제와 일제 말기라는 지난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며 "대하소설, 장편소설, 단편소설 등 다양한 형태와 분량의 소설이 존재하는 것이 이상적인 문학 풍토라고 생각한다. 후배들도 다양한 작품을 집필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이어 그는 "우리 사회에는 거대 담론, 미세 담론 모두가 필요하다. 대하소설, 단편소설을 작가들이 다양하게 생산하는 가운데 읽고 싶은 사람이 읽는, 그런 풍토가 형성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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