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들도 김 할머니 세계적 인권 운동가로 타전

1일 엄수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발인식
1일 엄수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발인식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향년 92세로 영면했다. 고(故) 김 할머니의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발인은 1일로 이승에서의 마지막날을 기린다. 

1일 오전 6시30분께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김 할머니의 발인이 엄수됐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고발하는 데 지난 평생을 함께한 동료들은 운구차에 오른 김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눈물로 작별 인사를 했다. 

김 할머니의 운구차는 이날 오전 8시30분께 서울광장에 집결한 추모행렬과 만나 광화문을 거쳐 종로구 구(舊)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영결식을 치른다. 매주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가 열리는 곳이다.

김복동 할머니를 보내는 시민의 글
김복동 할머니를 보내는 한 시민의 글

지난달 28일 오후 10시41분께 암으로 운명을 달리한 김 할머니는 세계 곳곳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를 증언하고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구한 국내 위안부 피해의 산 증인이었다.

김 할머니는 생전 서슬퍼런 눈으로 지켜봤던 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영결식을 마무리한 뒤 충남 국립 망향의 동산에 안치된다. 하관식은 오후 5시에 진행된다.

앞서 지난달 28일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소천한 김 할머니를 추모하고자 분향소가 마련됐다. 한국 관련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는 지난달 31일 독일 사무실 내 전시공간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한편 미국 뉴욕타임즈는 부고면에 김 할머니를 세계적 인권 운동가로 소개했다. 로이터 등 주요 외신도 일제히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생전에 김 할머니는 자신과 같은 수많은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가져왔다고 뉴욕타임즈는 전했다.

외신이 집중 조명한 것은 전 세계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렸던 할머니의 삶이었다.

[김복동/할머니 (2016년 12월 수요집회) : 우리들이 위로금 받겠다고 싸우고 있는 줄 압니까? 나라에 힘이 없어 국민들이 억울하게도 잡혀가서 너무나도 분통이 터져…]

[김복동/할머니 (2016년 9월) : 우리는 100억이 아니라 1000억을 줘도 역사를 바꿀 수가 없습니다.]

[김복동/할머니 (2017년 11월 수요집회) : (일본이) 입을 다물고 말을 안 하고 있거든. 그러나 세계는 다 알고 있어. 언젠가는 알 날이 안 오겠습니까?]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1926-2019) 약전]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출생

1940년 만 14세에 일본군‘위안부’로 연행

1948년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간 지 8년째 되던 22세에 귀향

1992년 제1차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증언

1993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하여 증언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의회로부터 용감한 여성상 수상

2012년 정대협과 함께 전시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 설립

2015년 전쟁.무력분쟁지역 아이들 장학금으로 5000만원 나비기금에 기부

2017년 서울특별시 명예의 전당에 선정

2019년 바른의인상 수상, 상금 500만원 재일조선학교를 위해 <김복동의 희망>에 후원


 

저작권자 © 일요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