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감원장 "법률적 리스크를 잘 체크해달라는 것"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함 행장은 청탁을 받고 신입사원을 부정 채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현재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채용비리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세워진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연임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형사 기소된 함 행장이 세번째 연임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 정상적 경영 형태로 보기 어렵다고 금감원은 판단하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금감원 관계자는 하나금융지주 이사회 구성원들을 서울 시내 모처에서 만나 함 행장의 연임에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은 함 행장의 3연임 문제에 대해 "(행장 선임을) 원칙과 절차에 따라 투명하게 하고, 회사 지배 구조를 훼손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이 면담한 사외이사는 윤성복 이사회 의장과 차은영·백태승 이사다. 이들 3명은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과 함께 그룹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구성한다. 하나금융지주 임추위는 이달 28일 회의를 통해 차기 행장 후보를 2명으로 압축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언론에 "금융계에선 함 행장이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장수한다는 말이 파다하다"며 "하나은행 내규에도 1심 유죄를 받은 직원은 퇴사하도록 했는데, 모범을 보여야 할 행장이 연임을 시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채용 비리 등 혐의로 지난해 검찰에 기소돼 현재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피고 함 행장의 연임에 분명히 우려를 표하고 나선 것이다. 

다만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예상되는 관치금융 논란을 의식하며 "입장 표명이 부담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형사 기소된 은행장이 2년 임기를 또 소화하겠다고 나선 것은 누가 봐도 정상적 경영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장의 우려를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헌 금감원장도 27일 은행장 대상 조찬 강연 직후 기자들을 만나 "감독당국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며 "법률적 리스크를 잘 체크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 행장은 인사청탁을 받고 9명을 부정 채용한 혐의와 남녀 직원의 비율을 임의로 조작해 채용한 혐의를 받고 재판에 세워졌다.  

함 행장의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함 행장은 자신의 지인 자녀와 지인의 조카가 하나은행 신입직원 채용과정에 지원했으니 '잘 봐달라'라는 부탁을 받고, 인사부장에게 해당 지원자를 '잘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이들의 점수는 조작됐고 합격자 명단에 그 이름을 올렸다.  

또 합숙면접에서는 관리 대상 지원자가 꼴찌를 했는데도 전형을 통과한 사례도 있었으며, 해외대학 출신들을 따로 추려 합격자를 따로 선정하는 등 당초에 없던 전형을 새로 만들어 합격자 명단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공소장에는 함 행장이 "남자직원을 더 많이 뽑으라" 고 지시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검찰은 지난 2013년 하반기 신입채용에서 서류합격자 비율을 '남녀 4:1'로 정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은 남성 지원자를 합격시킨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를 함 행장에 두고 있다.

금감원이 함 행장 연임에 우려를 표하기 앞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및 그 산하 하나은행 지부도 성명을 내고 함 행장의 연임을 강하게 반대했다.

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도 "채용비리 몸통 함영주 행장, 연임은커녕 법의 심판으로 단죄해야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함 행장의 연임을 강하게 반대했다.

또 하나은행 지부 노조 관계자는 "함 행장이 임기 중 유죄가 확정될 경우, CEO 리스크로 은행의 이미지가 실추될 것이 우려되는 만큼 함 행장 스스로가 아름답게 물러서길 바란다"고 말하며 함 행장의 연임을 반대했다.

한편 금감원이 함 행장 연임에 우려를 표명한 것과 관련 자유한국당은 '당국의 과도한 개입'이라고 비판하며, '금융권 블랙리스트'를 언급하면서 이를 정치 쟁점화하려 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한국당 간사인 김종석 의원은 "금융감독과 인사개입은 다르다"며 "3월 임시국회 때 금감원장을 상대로 집중 추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무위 소속인 같은 당 김용태 의원도 "금감원이 민간 은행장 선임에 관여해 특정인을 배제하려는 건 '금융권 블랙리스트'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지배구조 리스크 우려는 관치가 아니라 감독당국의 기본 소임"이라고 반박했다. 또 "민간은행 인사에 개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은행장 선임에 관한 권한과 책임은 전적으로 이사회에 있음을 면담과정에서도 명확히 밝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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