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약서 수용 조건으로 재계약 제시…노조 탄압으로 볼 소지도
농협물류 "화물기사, 노동자 아닌 개인사업자" 선 긋기

화물연대 서경지부 농협물류안성분회는 9일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화물연대에 가입했다고 갑자기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것은 노조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날 집회에서 삭발식까지 진행하며 의지를 보였다.<br>
화물연대 서경지부 농협물류안성분회는 9일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화물연대에 가입했다고 갑자기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것은 노조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날 집회에서 삭발식까지 진행하며 의지를 보였다.

농협물류가 화물연대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연대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확약서'를 들이밀고 화물차 기사 수십명의 재계약을 지연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비난이 일 전망이다.

또 화물기사와 같은 특수고용형태의 '학습지교사' 노조가 지난해 대법원에서 노동자임을 인정받은 판례에 미뤄 볼 때 화물차 기사도 노동자의 성격이 있어, 확약서 서명을 조건으로 한 농협물류의 재계약 행태가 노조 탄압이 될 소지도 높아 보인다.

화물연대 서경지부 농협물류안성분회는 9일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화물연대에 가입했다고 갑자기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것은 노조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날 집회에서 삭발식까지 진행하며 의지를 보였다.

화물연대 서경지부 농협물류안성분회 등에 따르면 농협물류 안성농식품 물류센터에서 일해 온 화물차 기사 81명은 지난 2월부터 3월 사이 화물연대 산하 노조에 가입했다.

노조는 계약 해지일이 다가오자 농협물류 측이 갑자기 '확약서'를 내밀며 "운송 관련 단체 등에 가입하지 않을 것을 확약한다"는 문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까지 화물연대에 가입한 81명 가운데 10여명은 농협물류가 확약서를 제시하기도 전에 계약했으나 나머지 60여명은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농협물류가 화물기사에 제시한확약서(자료-농협물류안성분회)
농협물류가 화물기사에 제시한확약서(자료-농협물류안성분회)

윤선호 민주일반연맹 기획실장(공인노무사)은 "화물차 기사나 학습지 교사 등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할 가능성이 커 사회 전반에서도 한창 논의가 되는 직종"이라며 "노조 가입 자체를 이유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면 노조 탄압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은 직업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있다.

또 근로기준법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노동자로 보고 있다.

실제 관련 판례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가 노동자임을 인정 받은 사례가 있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은 본사와 위탁계약을 맺은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습지 교사가 회사의 노동자임을 인정했으며 이들이 조직한 노동조합 또한 인정한 바 있다.

대법원(재판장 민유숙)은 "학습지 교사의 업무 내용 등을 보면 다른 일을 겸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본사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이들의 주된 소득원이었다"며 "이들이 제공하는 노무는 본사의 필수적인 노무에 해당하고 이들이 회사에 전속돼 있었던 점 등을 들어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로 인정되며 이들이 구성한 노동조합도 인정된다"고 판결해 보였다.

농협물류 관계자는 "보통 화물차 기사의 총급여는 550만여원이며 유류비 150만여원과 도로통행료 36만여원 등을 제하고 나면 월 급여는 300만원 정도"라며 "여기에서 차량 보험료, 지입료, 소모품 교환비 등을 제하면 한 달 수입은 개인 차이가 있지만 150만원에서 200만원정도"라고 말했다.

화물차 기사들이 농협물류로부터 급여의 형태로 노무의 대가를 지급 받았으며 이들이 제공하는 유통 업무는 농협물류의 필수적인 노무에 해당하고 기사들이 받는 급여는 이들의 주된 소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이들을 회사의 전속 노동자로 볼 여지가 분명 있어 '단체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확약서 서명을 조건으로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행태는 노조 탄압임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농협물류안성분회 관계자는 "평균 5년 넘게 이곳에서 물류를 담당했는데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건 노조 탄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한 달 꼬박 일해도 손에 쥔 건 160만원 정도였다"고 토로하며 주장했다.

이에 관련 농협물류 관계자는 "이들은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고 명확히 선을 그으며 "3월 말로 예정된 정상적인 계약 만료 시점에 따라 계약을 종료한 것일 뿐 노조에 가입했다고 해서 계약을 해지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이날 집회에서 노조는 "사기업도 아닌 국민의 혈세로 설립된 농협의 자회사인 농협물류에서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생존권을 박탈하는 방법으로 탄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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