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회계법인 이어 신용평가사에도 ‘삼성바이오 평가서’ 조작 요구
에프앤자산평가·NICE 등, 평가작업 없이 ‘콜옵션 평가불능 의견서’ 써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는 당국의 수사가 급물살을 타며 퍼즐 조각이 점점 맞춰지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최근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 카드를 꺼내든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 정당성 시비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신용평가사인 에프엔자산평가가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의 요구에 따라 의견서를 써 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견서가 반영됨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는 자본잠식을 피할 수 있었다. 삼성바이오는 당시 제일모직의 자회사였으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대주주였다.

3일 한겨례 보도를 보면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 가운데 한 곳인 에프앤자산평가는 2015년 말 삼성바이오 쪽 요구로 ‘콜옵션 평가불능 의견서’를 작성했다.

삼성바이오는 미국계 제약회사인 바이오젠과 함께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를 설립했다. 설립 당시 지분율은 삼성바이오 94.6%, 바이오젠은 5.4%였다. 

다만 바이오젠에는 향후 삼성에피스의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 프리미엄을 가지고 있었다. 콜옵션 행사를 통해 최대 49.9%까지 삼성에피스의 지분을 가질 수 있었다.

금융당국과 검찰은 회계상 부채로 잡히는 콜옵션의 존재가 알려지면 당시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가 자본잠식 상태로 평가될 가능성이 커, 일부러 콜옵션을 숨긴 것으로 보고 있다.

중요한 점은 에프앤자산평가는 의견서 작성 시점을 실제 작성일인 '2015년 말'이 아닌 '2014년 말'로 조작해줬다는 것이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2015년 초 사업보고서(2014년 회계연도) 작성 때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을 부채로 잡지 않은 이유에 대한 증빙자료가 필요해, 사후에 신용평가사 의견서를 조작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후 2015년 삼성바이오는 삼성에피스의 지배 형태를 변경했다.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한다'는 의사를 타진해 왔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는 삼성에피스의 가치를 장부가액에서 공정가액 평가하고 4조원대의 평가차익을 통해 회사의 몸값을 띄웠다. 동시에 삼성바이오의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의 가치 역시 부풀려졌다. 

그 결과, 이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제일모직 1 : 삼성물산 0.35)에 영향을 줬다. 이 과정에서 제일모직은 합병의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에프앤자산평가는 의견서를 쓰는 과정에서 콜옵션 평가 근거가 된 기초자료조차 삼성바이오로부터 받지 않았다고 한다. 

나이스(NICE), 케이아이에스(KIS) 등도 실제 평가 작업을 하지 않은 채 삼성바이오 측 요구대로 의견서를 써줬다고 한다.

한편 콜옵션과 관련 삼성바이오 외부감사를 맡은 삼정케이피엠지(KPMG) 소속 회계사들은 최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콜옵션 계약서를 받은 적이 없다. 삼성 측 요구로 거짓말을 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앞서 지난해 금융당국 조사 등에서 "(미국 업체 바이오젠과의) 콜옵션 계약서를 제공받았다. 이를 검토한 결과 회계장부에 반영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고 진술한 바 있다.

 

저작권자 © 일요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