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무리한 요구로 사업 배제" VS 코트라 "사업 추진 적절하지 않아 협상 결렬"

서울시 서초구 헌릉로 소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전경.
서울시 서초구 헌릉로 소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전경.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발주 용역의 우선협상대상으로 선정해 놓고 얼마 후 해당 중소기업을 배제하고 대기업에 170억원대 사업을 몰아줬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이 중소기업은 코트라를 상대로 우선협상자 지위보전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해 놓은 상황으로 향후 뜨거운 법정 공방도 예상된다.

전시 디자인 등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이 중소기업은 피앤(PN·대표이사 정강선)으로 정부기관인 코트라로부터 1순위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가 이내 협상 결렬 통보를 받았다.

23일 PN과 코트라 등의 취재를 종합한 결과, 코트라는 지난 2월 '2020 두바이 엑스포 한국관 전시·운영' 사업 용역을 발주해 이를 입찰에 부쳤다.

PN 측은 지난 3월 29일 KBS-N 컨소시엄을 구성해 제안서를 접수했다. 코트라는 다음날인 30일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을 위촉해 제안서를 평가했고, PN을 1순위 우선협상대상으로 선정했다.

코트라는 전시 사업의 전시는 PN에, 전시장 운영은 KBS-N에 각각 발주했다. 

2순위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광고 계열사인 이노션이었다. 3순위는 광고사업을 하며 앞서 코트라 한국관 전시 사업의 외주 용역을 여러차례 수주했던 ㄱ업체였다. 

하지만 우선순위협상 대상이었던 PN은 입찰이 시작된지 35일만에 협상결렬 통보를 받았다. 코트라는 PN과 협상 결렬을 통보한 후 곧바로 이날 2순위인 이노션에 협상 개시 통보를 했다.

PN 측은 입장문을 통해 "PN과 협상 결렬을 통보하자마자 곧바로 다음 협상대상자와 협상을 개시했다는 것은 두 당사자 사이의 뭔가 유착이 있는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코트라 측은 PN과의 협상을 결렬한 이유에 대해 "기술과 예산 등에서 불안 요소가 많아 어쩔 수 없이 계약을 해지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PN 측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면 코트라가 PN과 협상을 결렬하는 과정이 다소 석연치 않아 보인다. PN 관계자는 "기한이 여유있게 주어졌다면 기술 구현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강선 PN 대표는 "사전에 특정 업체가 수주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주장했다.

예산 견적 포함 72개 세부사항 답변에 영업일 기준 3일?

그러면서 그는 "결국 경쟁력 있는 중소업체가 사전 낙점설을 물리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확정되자 어떻게든 우리를 배제하기 위해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겠냐"고 토로했다.

코트라가 PN 측에 보내온 협상 개시 문서를 보면 코트라는 지난 4월 5일 협상개시를 통보하며 10일까지 72가지 항목의 상세 제안요청에 대한 회신을 요구했다. 

PN 관계자는 "이 공문은 5일 업무 시간이 끝난 이후인 오후 7시에 보내졌다"고 말했다.

4월 5일은 금요일이었으며 주말을 제외한 영업일을 기준으로 하면 코트라는 72개 항목에 대한 상세한 답변을 요구하며 PN측에 사실상 3일의 기한을 준 것이다.

PN에 따르면 코트라가 요구한 내용은 답변을 위해 한달에서 약 3달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들이었고, 심지어 1년 가까이 걸리는 내용도 있었다. 

특히 PN은 코트라가 요구한 72가지 항목 중 정확한 예산 견적을 이 기한 안에 회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PN 관계자는 "코트라 측은 물량과 단가로 산출한 정확한 예산 견적을 요구했다"며 "정확한 물량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설계도면이 나와야 하는데 설계도면은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10일까지는 시간이 촉박해 모두 설명할 수 없었지만 11일과 19일 두차례에 걸쳐 72가지 항목 모두에 대해 최대한의 답변서를 보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코트라 관계자는 "PN 측이 요청 내용을 회신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면서도 "애초 PN 측이 제출한 제안서에서 항목을 세분화해 관련 내용을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입찰 단계에서 당초 PN 측이 제안서를 통해 구현 가능하다고 제시했던 내용들이 협상 기간 중 달라졌다"며 "코트라 입장에서는 제출된 자료가 불충분하다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PN이 입찰 당시 '기계에서 나는 소음을 음향으로 전환하는 기술을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상 PN 측은 이 기술을 구현해 본 이력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예산 견적에 대해서는 "PN 측이 코트라가 요구했다고 주장하는 예산 견적은 과업이 모두 끝난 뒤 나오는 최종 예산"이라며 "코트라 측이 요구한 예산안은 가(假)예산안으로 대략적인 예산안이 정해져야 사업을 진행할 수 있고, 이후 사업이 모두 마무리 됐을 때 최종적으로 소요된 예산과 가예산을 비교해 사업 진행 상의 효율성·적정성 등을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왜 PN만 협상 기간이 짧았나

협상을 거쳐 계약을 체결(또는 결렬)한 기간에 대한 형평성 논란도 일 것으로 보인다.

코트라는 지난 5일 회사 공식 문서를 통해 PN에 협상 결렬 통보를 해왔다. 입찰이 시작된지 35일만이다.

PN에 따르면 앞서 소개한 이번 입찰의 3순위 협상대상으로 선정된 ㄱ업체는 지난 2017년 코트라와 진행한 해외 한국관 전시 사업에서 개찰 이후 213일간의 협상을 통해 계약을 체결했다.

역시 코트라의 발주를 받아 진행한 2015년 사업도 개찰일 이후 289일의 기간을 두고 계약을 체결했다. ㄱ업체의 2010년도 사업은 계약을 체결하기까지 255일의 기간이 소요됐다.

PN 관계자는 "코트라가 앞서 진행한 해외 한국관 엑스포 사업과 비교할 때 이는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코트라 관계자는 "앞서 ㄱ업체가 진행한 과업과 이번 입찰을 통해 진행되는 과업은 그 종류가 달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두바이 엑스포는 2020년 10월 20일 개막하며 6개월간 진행되는 행사로 코트라 측에서 한국관 건축을 맡게 됐다"며 "설계자와 시공사 등을 선정하는 등의 과정과 두바이 현지의 기후조건에서 건축이 이루어 지는 점 등을 감안하면 건축에만 1년이 넘게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코트라 측에서는 계획 일정이 촉박하다 판단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국관 사업 2순위 협상대상 이노션은 "노 코멘트"

한편 PN의 정 대표가 코트라와 이노션 간의 유착 의혹을 제기한 것과 관련해 이노션 관계자는 "노 코멘트"라고 짧게 답했다. "'할 말이 없다'는 것이 회사의 공식 입장인지 물었더니 관계자는 "그렇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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