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로이트안진 소속 회계사들 검찰 조사에서 진술
삼성 의사 반영된 보고서 근거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삼성 측 요구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을 '1 대 0.35'에 맞춰 보고서 내용을 만들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에 대한 대책 논의를 위해 지난 7일 오후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연합뉴스)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을 평가한 보고서를 작성한 딜로이트안진 소속 회계사들이 최근 검찰 조사에서 이같이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보고서는 두 회사의 합병당시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합병에 찬성토록하는 근거가 됐다. 

이 합병으로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였고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최대주주 삼성물산)의 지분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했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합병 비율 보고서를 조작한 관련자 증언이 나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정당성이 한층 의심받게 됐다.

11일 한겨레 단독보도를 보면 삼성물산 의뢰로 합병비율 검토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안진 회계사들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삼성이 요구한 합병비율에 맞추기 위해 제일모직 가치는 높이고 삼성물산 가치는 낮추는 식으로 보고서 내용을 조작했다"고 진술했다.

보도에 따르면 회계사들은 제일모직 가치를 높이고 삼성물산 가치를 낮추기 위해 두 회사의 사업 내용과 현금·부채 등을 조작했다.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실체가 없는 바이오 사업을 2조9000억원으로 평가했고, 1조5000억~2조원의 부채로 평가해야 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콜옵션은 숨겼다.

또 삼성물산 가치를 축소하기 위해 현금성 자산 1조7000억원을 평가 때 누락했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할인율과 성장률도 조작했다.

보고서 작성에 관여한 회계사들은 검찰에서 "합병비율에 맞추기 위해 보고서 작성 과정에 삼성 쪽과 지속해서 협의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이익과 회사 규모가 2~3배 더큰 삼성물산이 제일모직보다 3배 낮게 평가돼 '1 대 0.35'의 비율로 지난 2015년 합병이 이뤄졌다.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지분 11.21% 가지고 합병의 케스팅보트 역할을 했던 국민연금은 삼성 측의 의사가 강하게 반영된 이 보고서를 근거로 합병을 찬성했고 그해 7월 17일 합병안은  최종 의결됐다.

합병에 따른 수혜는 이 부회장에게 돌아갔다. 당시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최대주주(23.2%)였지만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지분(0.6%)은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합병 당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보유해 최대 주주였다. 합병 이후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지분 17%를 확보하며 그룹의 알짜인 삼성전자를 간접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돼, 결과적으로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했다.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부당한 합병으로 이 부회장이 얻게 된 금전적 이익이 2조~3조6000억원에 이르고, 국민연금은 3300억~6000억원가량 손해를 본 것으로 추산했다.

한편 회계사들의 합병 비율 보고서 조작 실토는 8월 이후로 예상되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등의 ‘국정농단’ 대법원 선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대법원 선고의 핵심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대가로 박근혜 정부와 뇌물을 주고 받았는지 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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